[남북이산가족 상봉] 사흘째 이모저모..다시 이산의 아픔속으로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50년만에 만났는데 이렇게 빨리 돌아가다니…""오마니,다음에 또 오갔습니다"
북쪽 서울방문단은 17일 숙소인 서울 광장동 쉐라톤 워커힐호텔 방에서 가족들과 두번째이자 마지막 개별상봉을 갖고 이별의 아픔을 토해내며 서로의 얼굴을 만지고 또 만졌다.
…북의 서기석(67·성악교수)씨는 어머니 김금예(90) 여동생 기순(56)씨 등 남쪽 가족들을 바라보다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만날 때보다 헤어질 때…"라며 말을 잇지 못하던 서씨는 "이제 헤어지면 언제 다시 만날수 있을까.
같이 더 정을 나눴으면 좋겠지만 헤어질 순간이 다가와 서운하다"며 계속 울먹였다.
어머니 김씨는 아들 서씨의 마음을 안다는 듯 등을 두드리며 "너를 집에 데리고 가 따뜻한 밥을 지어주고 싶고,네가 낳은 북한 손주 소녀도 보고 싶다"며 아쉬워했다.
서씨는 어머니에게 큰 절을 한 후 손을 잡고 "다시 만날때까지 건강하게 오래 사세요"라며 흐르는 눈물속에 작별인사를 했다.
…"아버지…아버지…""얘…얘들아 미…미안하다"
북한 방직기술의 개척자이자 공훈과학자인 아버지 조용관(78)씨와 아들 경제(52),딸 경희(50)씨는 말을 잇지 못했다.
용관씨는 아들과 딸을 품속에서 놓치지 않겠다며 오열 속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아버지를 보기위해 호주에서 날아온 경제와 경희 씨도 아버지를 연신 부르며 가지말라고 매달렸다.
"그토록 그리워했던 아버진데 또 떠나시면 우리 남매는 어떻게 합니까"
용관씨도 자신을 기다리며 세상을 떠난 아내에 대한 그리움과 아버지 노릇도 못하고 또다시 자식 곁을 무정하게 떠나야 한다는 생각에 눈물범벅이 됐다.
아버지 얼굴을 전혀 기억못하던 경희씨는 "만난지 며칠됐다고 떠나려고 그러세요,저도 데리고 가세요"라며 아버지에게 매달려 떨어지지않아 눈시울을 붉히게 만들었다.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 같다"
휠체어를 타고 온 어머니 이덕순(87·경기도 하남시)씨는 마지막이 될지 모를 큰 아들 안순환(65)씨의 생일상을 차려줬다.
안씨는 어머니가 차려준 생일상을 받고 큰 울음을 터뜨렸다.
기쁨과 슬픔이 교차했기 때문이다.
50년만에 처음 받아오는 생일상에 눈물 겨워 케익의 촛불도 제대로 꺼지 못했다.
안씨는 "일생의 가장 큰 선물을 받았다"며 "어머니의 크나큰 사랑을 가슴에 한껏 담아 북으로 가게돼 너무 기쁘다"며 이별을 앞에 두고도 즐거워 했다.
이씨는 지난달말 위암판정을 받고 서울중앙병원에 입원중이었으나 아들을 만나겠다는 일념으로 주위의 만류를 뿌리치고 이번 상봉기간 내내 아들과 함께 했다.
그러나 안씨는 "어머니가 저를 제일 사랑하셔서 더욱 가슴이 아팠을 것"이라며 북받치는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는 듯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특별취재팀
북쪽 서울방문단은 17일 숙소인 서울 광장동 쉐라톤 워커힐호텔 방에서 가족들과 두번째이자 마지막 개별상봉을 갖고 이별의 아픔을 토해내며 서로의 얼굴을 만지고 또 만졌다.
…북의 서기석(67·성악교수)씨는 어머니 김금예(90) 여동생 기순(56)씨 등 남쪽 가족들을 바라보다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만날 때보다 헤어질 때…"라며 말을 잇지 못하던 서씨는 "이제 헤어지면 언제 다시 만날수 있을까.
같이 더 정을 나눴으면 좋겠지만 헤어질 순간이 다가와 서운하다"며 계속 울먹였다.
어머니 김씨는 아들 서씨의 마음을 안다는 듯 등을 두드리며 "너를 집에 데리고 가 따뜻한 밥을 지어주고 싶고,네가 낳은 북한 손주 소녀도 보고 싶다"며 아쉬워했다.
서씨는 어머니에게 큰 절을 한 후 손을 잡고 "다시 만날때까지 건강하게 오래 사세요"라며 흐르는 눈물속에 작별인사를 했다.
…"아버지…아버지…""얘…얘들아 미…미안하다"
북한 방직기술의 개척자이자 공훈과학자인 아버지 조용관(78)씨와 아들 경제(52),딸 경희(50)씨는 말을 잇지 못했다.
용관씨는 아들과 딸을 품속에서 놓치지 않겠다며 오열 속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아버지를 보기위해 호주에서 날아온 경제와 경희 씨도 아버지를 연신 부르며 가지말라고 매달렸다.
"그토록 그리워했던 아버진데 또 떠나시면 우리 남매는 어떻게 합니까"
용관씨도 자신을 기다리며 세상을 떠난 아내에 대한 그리움과 아버지 노릇도 못하고 또다시 자식 곁을 무정하게 떠나야 한다는 생각에 눈물범벅이 됐다.
아버지 얼굴을 전혀 기억못하던 경희씨는 "만난지 며칠됐다고 떠나려고 그러세요,저도 데리고 가세요"라며 아버지에게 매달려 떨어지지않아 눈시울을 붉히게 만들었다.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 같다"
휠체어를 타고 온 어머니 이덕순(87·경기도 하남시)씨는 마지막이 될지 모를 큰 아들 안순환(65)씨의 생일상을 차려줬다.
안씨는 어머니가 차려준 생일상을 받고 큰 울음을 터뜨렸다.
기쁨과 슬픔이 교차했기 때문이다.
50년만에 처음 받아오는 생일상에 눈물 겨워 케익의 촛불도 제대로 꺼지 못했다.
안씨는 "일생의 가장 큰 선물을 받았다"며 "어머니의 크나큰 사랑을 가슴에 한껏 담아 북으로 가게돼 너무 기쁘다"며 이별을 앞에 두고도 즐거워 했다.
이씨는 지난달말 위암판정을 받고 서울중앙병원에 입원중이었으나 아들을 만나겠다는 일념으로 주위의 만류를 뿌리치고 이번 상봉기간 내내 아들과 함께 했다.
그러나 안씨는 "어머니가 저를 제일 사랑하셔서 더욱 가슴이 아팠을 것"이라며 북받치는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는 듯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특별취재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