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이산가족 상봉] 30분간 100편의 비극드라마 .. 워커힐 환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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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울면 안돼.네가 울면 내가 집에 못가"
"다시 만날때까지 꼭 살아계셔야 합니다"
18일 오전 북측 가족들의 환송행사가 열린 워커힐 호텔 본관앞.남과 북의 가족 수백명이 뒤엉켜 오열과 통곡으로 ''눈물 바다''가 됐다.
세상의 가장 큰 비극이 이 땅에서 벌어진 것이다.
환송행사 시간은 불과 30분.이별의 시간으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울고 또 울었지만 눈물은 그칠줄 몰랐다.
북측 방문단 1명당 한사람의 남쪽 가족만 환송행사를 가지도록 한다는 방침에 따라 전경들이 ''인의 장막''을 쳤지만 혈육의 정을 나누려는 이산가족들을 막지 못하고 쉽게 무너져 버렸다.
부모와 자식을 떼어놓는 일은 차마 잔인하기까지 했다.
노모를 부둥켜 안은 아들은 "부디 다시 만날 때까지 살아계시라"며 오열했다.
늙어 버린 자식을 품에 안은 어머니는 "애야,가지마라.나 하고 여기서 살자"며 놓아주지 않았다.
북측 리영수(66)씨는 휠체어를 타고 나타난 어머니 김봉자(86)씨를 붙들고 대성통곡했다.
매달리는 어머니를 억지로 떼어놓고 버스에 오른 영수씨는 차창밖으로 손을 흔들며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부르며 목놓아 울었다.
아들 리종필(69)씨를 떠나보낸 1백살 노모 조원호씨.치매에 걸려 사람도 못 알아보고 말도 잃었던 어머니는 북에서 온 아들의 이름만은 잊지 않고 애타게 불러댔다.
마지막 남은 기력을 다해 아들의 이름을 외치던 어머니는 끝내 119구급차에 실려가야했다.
우여곡절 끝에 거동이 불편한 노모 김애란(87)씨를 만난 량한상(69)씨는 휴대폰으로 어머니에게 작별인사를 건넸다.
병상에 누운 어머니가 "가지마라,가지마라"고 힘없이 외치던 모습이 떠올라 쉴새 없이 눈물을 흘렸다.
"어머니,다시 오겠습니다.
그때까지 꼭 살아계셔야 합니다".한상씨는 더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아들 조주경(68·김일성대학 교수)씨를 보낸 어머니 신재순(88)씨."떠나는 주경이 마음이 아프지 않도록 눈물을 보이지 말자"고 다짐하고 다짐했지만 끝내 오열하고 말았다.
"사랑하는 우리 아들,이제 가면 언제나 볼거나…".''하룻밤이라도 어머니랑 함께 자는게 소원''이라던 평양대 무용과 교수 김옥배(68)씨도 "살아서 너를 다시 볼 수 있겠니"라며 울부짖는 어머니 홍길순(88)씨의 품에 안겨 눈물을 쏟고 말았다.
북에서 온 오빠도 남쪽의 여동생을 꼭 껴안고 떨어질줄 몰랐다.
북측 김영호(72)씨는 오열하는 여동생 현순(66)씨에게 "절대 울면 안돼.네가 울면 내가 집에 못가.
내사진 있으니까…."라며 흐느꼈다.
언니 문양옥(67)씨를 환송나온 동생 경자(60)씨는 "언니,어디가"라고 울부짖다 끝내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이날 워커힐 호텔은 또 다시 자식과 생이별을 하게된 어머니들의 처절한 울부짖음과 그리던 형제 자매들과 헤어지는 슬픔을 못이긴 이산가족들의 오열로 눈물없이는 볼 수 없는 한편의 드라마가 펼쳐졌다.
이건호 기자 leekh@hankyung.com
"다시 만날때까지 꼭 살아계셔야 합니다"
18일 오전 북측 가족들의 환송행사가 열린 워커힐 호텔 본관앞.남과 북의 가족 수백명이 뒤엉켜 오열과 통곡으로 ''눈물 바다''가 됐다.
세상의 가장 큰 비극이 이 땅에서 벌어진 것이다.
환송행사 시간은 불과 30분.이별의 시간으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울고 또 울었지만 눈물은 그칠줄 몰랐다.
북측 방문단 1명당 한사람의 남쪽 가족만 환송행사를 가지도록 한다는 방침에 따라 전경들이 ''인의 장막''을 쳤지만 혈육의 정을 나누려는 이산가족들을 막지 못하고 쉽게 무너져 버렸다.
부모와 자식을 떼어놓는 일은 차마 잔인하기까지 했다.
노모를 부둥켜 안은 아들은 "부디 다시 만날 때까지 살아계시라"며 오열했다.
늙어 버린 자식을 품에 안은 어머니는 "애야,가지마라.나 하고 여기서 살자"며 놓아주지 않았다.
북측 리영수(66)씨는 휠체어를 타고 나타난 어머니 김봉자(86)씨를 붙들고 대성통곡했다.
매달리는 어머니를 억지로 떼어놓고 버스에 오른 영수씨는 차창밖으로 손을 흔들며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부르며 목놓아 울었다.
아들 리종필(69)씨를 떠나보낸 1백살 노모 조원호씨.치매에 걸려 사람도 못 알아보고 말도 잃었던 어머니는 북에서 온 아들의 이름만은 잊지 않고 애타게 불러댔다.
마지막 남은 기력을 다해 아들의 이름을 외치던 어머니는 끝내 119구급차에 실려가야했다.
우여곡절 끝에 거동이 불편한 노모 김애란(87)씨를 만난 량한상(69)씨는 휴대폰으로 어머니에게 작별인사를 건넸다.
병상에 누운 어머니가 "가지마라,가지마라"고 힘없이 외치던 모습이 떠올라 쉴새 없이 눈물을 흘렸다.
"어머니,다시 오겠습니다.
그때까지 꼭 살아계셔야 합니다".한상씨는 더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아들 조주경(68·김일성대학 교수)씨를 보낸 어머니 신재순(88)씨."떠나는 주경이 마음이 아프지 않도록 눈물을 보이지 말자"고 다짐하고 다짐했지만 끝내 오열하고 말았다.
"사랑하는 우리 아들,이제 가면 언제나 볼거나…".''하룻밤이라도 어머니랑 함께 자는게 소원''이라던 평양대 무용과 교수 김옥배(68)씨도 "살아서 너를 다시 볼 수 있겠니"라며 울부짖는 어머니 홍길순(88)씨의 품에 안겨 눈물을 쏟고 말았다.
북에서 온 오빠도 남쪽의 여동생을 꼭 껴안고 떨어질줄 몰랐다.
북측 김영호(72)씨는 오열하는 여동생 현순(66)씨에게 "절대 울면 안돼.네가 울면 내가 집에 못가.
내사진 있으니까…."라며 흐느꼈다.
언니 문양옥(67)씨를 환송나온 동생 경자(60)씨는 "언니,어디가"라고 울부짖다 끝내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이날 워커힐 호텔은 또 다시 자식과 생이별을 하게된 어머니들의 처절한 울부짖음과 그리던 형제 자매들과 헤어지는 슬픔을 못이긴 이산가족들의 오열로 눈물없이는 볼 수 없는 한편의 드라마가 펼쳐졌다.
이건호 기자 leek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