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남북한 교류시대가 열리고 있다.

우리가 북한 사람과의 만남에서 가장 어려운 문제는 무엇보다도 커뮤니케이션 문제라고 생각한다.

물론 남북한은 1천5백년간 민족문화 전통을 공유해 왔다.

또 남북한은 같은 민족어를 사용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50년간의 분단 역사는 남북한에 각각 서로 다른 문화 인프라를 구축해 놓았다.

오늘의 북한에서 가시적인 문화 인프라로 평양을 들 수 있다.

평양이야말로 북한의 이른바 주체사회주의를 집약한 ''도시인프라''다.

모스크바나 파리를 구경한 사람들은 누구나 평양이 유럽의 전통적 도시구조를 본뜬 사실을 금방 알 수 있다.

물론 사유재산을 인정하지 않는 북한 체제니까 그처럼 완벽한 ''계획 도시''가 가능했을 것이다.

''평양''이 북한문화 인프라의 하드웨어라면, 북한에서 ''정치담화''는 소프트웨어 문화 인프라에 해당한다.

수령과 당과 인민의 이른바 주체 사회주의체제에서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위원장의 정치담화야말로 국가의 모든 발표문과 성명은 물론 문화 예술작품의 북한말로 ''종자''가 되는 것이다.

그럼 북한의 정치담화 문화 인프라는 어디서 왔는가.

물론 서양의 마르크스주의에서 왔다.

김일성 사상, 즉 주체사상 역시 마르크스주의 문화 인프라를 기초로 발전시킨 것이라고 스스로 말하고 있다.

얼마전 공개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우리 언론사 사장단과의 오찬 대화록은 6.15 남북정상회담 이후 다시 한번 북한식 정치담화의 정형을 보여줬다.

정상회담과 남북교류에서 김정일 위원장의 적극적인 역할을 놓고 우리 사회엔 양극화된 인식이 맞서고 있다.

북한이 생존을 위해 ''전략적 변화를 선택한 행동''으로 보는 견해와, ''남한 사회에 연공(軟共)의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한 일관된 통일전선 전략''이라는 정반대 주장이다.

1992년 1월3일 김정일 당시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은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책임 일꾼들과 한 담화''에서 공산주의 종주국 소비에트연방 해체라는 충격을 다음과 같이 소화하고 있었다.

"…최근년간 일부 나라들에서 사회주의가 좌절되고 자본주의가 복귀됐으며 얼마전엔 소련이 해체돼 자기 존재를 끝마쳤습니다.

이런 사태를 놓고 제국주의자들과 반동들은 마치 자본주의가 ''승리''하고 사회주의가 ''종말''을 고한 것처럼 떠들고 있습니다.

이것은 사태의 진상을 옳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일부 사람들 속에서 사상적 혼란을 일으키고 있으며 세계혁명 발전에 심각한 후과(영향)를 미치고 있습니다.

오늘 조성된 사태에서 교훈을 찾고 새로운 기초 위에서 사회주의 운동을 재건하며 사회주의 위업을 앙양에로 이끌어 나가는 것은 절박한 력사적 과제로 나서고 있습니다…"

만일 이 문장을 영어나 불어로 옮긴다면 구태여 의역이 필요 없다.

바로 직역하더라도 그대로 영어나 불어가 된다.

거꾸로 말하면 영어나 불어로 된 원문을 한국어로 직역한 느낌마저 준다.

왜 그럴까.

북한의 정치담화는 마르크스주의 유물론적 인식론에 충실한 서양식 문장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남한은 냉전시대에는 주로 미국과 서유럽 및 전후 일본과의 문화적 교류에서 자본주의 문화 인프라를 만들어 왔다.

최근 글로벌라이제이션 추세와 함께 미국을 중심으로 한 시장경제 문화 인프라가 늘어나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한국만큼 글로벌라이제이션 문화에 대한 민족 문화의 저항이 강한 나라도 드물 것이다.

서울의 도시 컨셉트나 남한의 정치담화를 보면 북한과는 달리 강한 민족주의 문화 인프라가 지배적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한편 북한은 냉전 초기 소련을 모델로 해 사회주의문화 인프라를 도입했다.

오늘날 북한의 주체문화 인프라가 아무리 민족적 전통을 살렸다하더라도 기본적으로 소련모델의 사회주의문화 인프라를 떠나선 이해하기 어렵다.

적어도 문화인프라 측면에서 김정일 위원장의 정치담화는 어디까지나 서양식 변증법적 유물론의 인식을 갖고 접근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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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약력 =

△조선일보 기자
△문공부 전문위원
△주(駐)뉴욕문화원장
△공보처 정부간행물 제작소장
△세종연구소 객원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