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김치를 수출하는 회사의 도쿄 주재원과 주일대사관 무역협회 관계자들이 최근 긴급회의를 가졌다.

삿포로시내의 한 슈퍼마켓이 판 김치에서 배추벌레가 나와 일본언론의 집중 포화를 맞자 대책을 논의하기 위해서였다.

참석자들은 오간 얘기에 관해 밖에서는 입을 다물기로 했다.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올해는 불량식품 사고가 잦아 ''안심하고 먹을 게 없다''는 말까지 도는 일본시장에서 일격을 당한 한국 김치업체들로서는 불안과 불쾌감을 지우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은 해당업체뿐 아니라 한국김치의 이미지에 먹칠을 했다.

수출전선에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하지만 김치수출은 차제에 전략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내부에서도 적지 않다.

우선 마케팅 활동이다.

김치수출이 활기를 띠자 농수산물 유통공사와 농협유통등 일본에 나와 있는 유관업체들은 판촉행사 규모를 확대하고 TV광고도 시작했다.

그러나 행사장이건 백화점이건 김치를 판매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비슷한 한복차림이다.

구석진 곳에 자리잡는 경우가 많아 분위기도 밝지 않다.

유통경로와 맛도 문제다.

김치수출이 잘 된다지만 편의점 대형 슈퍼등 유명 유통업체들은 자체 조달망으로 한국김치를 사들이고 있다.

한국업체들로서는 최종 소비처를 직접 뚫지 못하고 중간 유통업자에 의존하다 보니 독자적 판로확보와 수익성 제고가 어렵다.

김치업체들은 또 본바닥 김치의 자부심과 종주국임을 강조한 나머지 현지화된 맛 개발을 소홀히 하는 느낌이다.

농협유통에서 김치를 샀다는 한 교민은 "김치를 좋아하지만 지나치게 맵고 냄새가 강했다"며 "일본 소비자 입맛을 고려하지 않은 게 안타깝다"고 지적했다.

김치는 우리의 대표적 먹거리다.

그러나 일본시장에서 한국김치의 비중은 20%선에 불과하다.

일본인 입맛에 맞게 만들어진 일제 김치가 대다수 상품진열대를 차지하고 패스트푸드점과 식당들은 김치를 이용한 메뉴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런 현상이 계속된다면 한국김치는 일본벽을 뚫지 못한채 세계화에서 점점 멀어질지도 모른다.

도쿄=양승득 특파원 yangs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