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답은 없다.

선택은 선택일 뿐이다.

중요한 건 그 선택행위를 합리화하고 자기긍정하는 것 아니겠는가.

지난 27일 서울연극제 첫 작품으로 막을 올린 ''바다의 여인''이 우리에게 들려주고픈 얘기다.

바다의 여인은 바다에서 비롯된다.

침묵이 흐르지만 자유롭게 유영할 수 있는 바다.

그 바다의 광활함을 인간계에서 어떻게 담보하겠는가.

바다의 여인 엘리다는 고뇌한다.

정신병을 앓던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마저 바다에서 익사한다.

현실은 냉혹하다.

선택은 자신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중년의 의사 하트위그뿐.

엘리다역의 윤석화는 극의 중간부에서 ''당신은 나를 샀잖아요''라고 외친다.

''바다의 여인''은 국내 연극계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작품이다.

대사가 극을 이끌어가는 것이 아니라 대사를 포함한 배우의 슬로 모션,조명,효과음악이 하나의 이미지를 만든다.

연출가 로버트 윌슨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 이미지로 표출된다.

그래서 정답이 없다.

엘리다는 이상,꿈을 선택하려다 현실을 긍정한다.

자신을 돌봐준 하트위그에게 다시 기댄다.

바다로 떠날 수 있는 ''자유''를 갈망하다 ''자유의지''를 허락해준 하트위그에게 다시 묻는다.

당신이 내게 선택권을 줬으니 당신을 선택할 ''자유''가 나에게 생겼다고.

"하트위그? 사랑하는 하트위그.내가 실수한 것은 아니죠?"/"무슨소리,나의 엘리다.

나의 아내.나의 삶.그 반대지.그래 당신은 자신을 적응시키는 걸 배웠죠.당신은 진화한 거요"

''바다의 여인''은 극 초반부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작품이다.

이런 연극을 국내 관객은 본 적이 없다.

북구의 황량한 배경이 바탕이어서 그럴까.

헨리크 입센 원작의 이국적인 정서가 객석의 눈들을 긴장하게 만든다.

하지만 메시지는 탄탄하다.

''자유''와 ''자유의지''의 이분법이 극속에서 하나가 된다.

결국 인간에 대한 따뜻한 마음과 믿음이 마지막 부분에서 관객들의 가슴을 훈훈하게 만든다.

장애인 교육자 출신의 윌슨이 얘기하려던 그 무엇이 가슴에 꽂히면서 공연장은 어느덧 따사로워진다.

상투적인 이미지를 만들기 쉬운 상황에서도 정말 산뜻하고 새로운 이미지를 갈구한다.

단조로 연주하는 바이올린 효과음악이 극의 분위기를 한껏 살리는 작품이다.

장규호 기자 sein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