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입삼 고문 약력 ]

<>1922년 함북 종성생
<>함북 경성고보 졸
<>미 미네소타대 정치학부,대학원 졸
<>영 런던대 대학원 수료
<>부흥부 산하 산업개발위 보좌위원
<>한국경제인협회 사무국장(62~71)
<>전경련 상임부회장(71~81)
<>한국의료보험협의회 회장(71~75)
<>한국투자회사협회장
<>전경련 상임고문(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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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가난을 탈피하고 근대화를 이룩하는 데 민(民)인 재계가 중추적 역할을 했다는 사실(史實)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습니다"

지난 98년 3월부터 최근까지 장장 2년5개월간 한국경제신문에 ''시장경제와 기업가 정신''이란 회고록을 연재한 김입삼(78) 전국경제인연합회 고문은 "회고록을 통해 민간 단체인 전경련이 시대적 소명의식을 갖고 어떻게 한국경제 발전을 이뤄냈는가를 생생히 전하고 기록으로 남기게 돼 큰 보람을 느낀다"고 밝혔다.

그는 "지난 60년대 5·16 군사정권이 경제발전을 혁명공약으로 내걸었으나 구체적 아이디어가 없었다"며 "경제발전 청사진을 그려내고 실행한 것은 정부가 아닌 재계였다"고 회고했다.

김 고문은 "경제학자들이 한국의 경제성장사에서 정부가 주도적 역할을 했다고 평가하지만 실제는 재계가 전략수립과 실행을 통해 이 만큼 발전시켰다는 점을 회고록을 통해 강조했다"고 말했다.

지난 62년부터 19년간 전경련 사무국장과 상임부회장을 역임한 김 고문은 "전경련은 역사학자 토인비가 말한 ''역사적 추진체인 창조적 소수집단''으로서 일익을 담당했다는 데 큰 자부심을 갖고 있다"고 덧붙였다.

19세기말 김옥균의 갑신정변 개혁이 실패한 원인을 따져보면 아이디어는 좋았으나 이를 실천할 조직이 없었기 때문이라며 전경련은 분명히 경제발전을 이뤄낸 중추적인 조직이라고 그는 강조했다.

김 고문은 이런 점에서 전경련이 최근 변혁기의 경제환경 변화에 대응하는 능력과 활동이 미흡하다는 일부 지적에 공감하며 "더 분발해야 한다"는 말로 전경련 사무국에 충고했다.

주1회 연재되는 회고록을 집필하기 위해 전경련 회관 도서관을 찾아 62년부터 나온 회보인 ''월간 전경련''과 전경련 사업보고서를 샅샅이 찾아보고 묻힐 뻔 했던 사료(史料)를 발굴했다고 그는 설명했다.

회고록을 집필하는 동안 지인들로부터 ''회고록을 읽어보니 경제발전 이면에 그런 스토리도 있었느냐''는 얘기와 격려를 많이 들었다고 전했다.

그는 회고록에선 ''한강의 기적''을 이뤄낸 세대가 어떻게 과제를 발굴하고 수행했는가를 기록해 다음 세대에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며 "목표가 10이라면 5를 해냈어도 인생은 성공한 셈"이라고 평가했다.

현역 전경련 간부로 활동하면서 지난 79년 한국과 동남아 국가를 중심으로 설립한 ''코리아 아시안 비즈니스 리더 컨퍼런스''와 73년 1차 오일쇼크 직후 발족시킨 ''열관리협회''가 없어지거나 유명무실해진 점이 아쉽다고 회고했다.

김 고문은 한국경제신문에 연재해온 회고록을 엮어 곧 자서전으로 출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정구학 기자 c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