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죠,어디서 나왔는지/겨울에선지,강에서 나왔는지/아니에요 목소리가 아니었습니다/침묵도 아니었죠/홀로 돌아오는 길목에 얼굴도 없이 거기 섰다가/나를 만지든가 했어요''(시 中)
1924년 처녀시집 ''스무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로 중남미 문학계를 놀라게 한 칠레 시인 파블로 네루다(1904∼1973).
약관 20세의 청년은 파리로 가고 싶었으나 문제는 돈이었다.
대학을 중퇴한 네루다는 물개 가죽 따위를 팔았지만 수입은 신통치 않았다.
외무 공무원이 되기로 결심한 네루다는 3년뒤 꿈을 이룬다.
최근 번역된 ''실론섬 앞에서 부르는 노래''(문학과지성사,고혜선 옮김,7천원)은 1927년부터 5년간 버마,실론,인도네시아 영사로 재직하며 인도 중국 일본 등을 방문한 경험을 담고 있다.
서구언어로 쓰여진 가장 뛰어난 초현실주의 시라는 평을 받는 작품들이라 상당히 난해하다.
''무슨 희망을 생각하며 무슨 참된 예언/무슨 결정적인 입맞춤을 마음속에 묻고/버림의 원인들,지혜의 원인들을 찾아야 하나/…/아,나의 존재가 지속되기를,지속되지 않기를/나의 순응이 정리되어 무쇠같은 속성을 갖기를/죽음과 태어남의 요동이 나 혼자 영원히 간직하고픈/깊은 곳을 흔들지 않기를''(어둠을 뜻합니다 中)
시집 전편을 지배하는 것은 고독과 상실감이다.
인도에서 네루다는 아무도 나를 알지 못한다고 외친다.
그는 영국인들과 어울리지 않는다.
''식탁과 의자,개 한마리,나의 보이…그것이 전부다''버마에서 네루다는 말이 통하지 않는 원주민 처녀와 사랑에 빠지지만 질투심에 눈 먼 그녀가 칼을 들고 덤비는 것으로 둘의 관계는 끝난다.
''밤이 깃들인 마음에/긴 네 이름 방울이/말없이 돌고 떨어져/부서지고 물이 된다//갑자기 들려오는 잃어버린 존재의 걸음같은 사랑/차가운 땅에 흘려진 네 영혼/빗소리에 섞여 날아가는/가엾은 파란 불꽃을 내뿜는다''(느린 비탄 中)
네루다는 중국에서 ''전세계 군인이 주인없는 집 털듯 너를 털었다''고 한탄하는가 하면 인도에서 ''너의 젊음을 일으키라''고 호소한다.
실론은 그에게 ''청춘의 잃어버린 유랑의 마음이 숨을 쉬었던 상자''였다.
''바다에 갔을때 나는 거대했습니다.
온세상보다 젊었지요/나는 세상이 존재한다는 것을 몰랐습니다/그저 물속에 가라앉은 탑만 알았지요/…/사는 게 아니라 자신을 숨길 줄만 알았지요/그리고 내가 가지 않으니까 나를 부를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그 약속은 이미 끝나버렸습니다''(초행 中)
1934년 마드리드에 부임,스페인 내전을 체험한 네루다는 깊고 인간적인 시세계를 펼쳐낸다.
파리로 발령난 것은 노년의 일.
1950년대 스리랑카 콜롬보를 다시 방문한 네루다는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다.
"내가 어떻게 아시아에서 살수 있었지? 젊음이 준 기적이로군"
윤승아 기자 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