꼼꼼한 업무처리와 치밀한 사전준비가 관행화돼 있는 일본사회에서는 기자회견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다.

어떠한 안건이건 수일전에 장소와 시간이 미리 고지되고 참석여부를 확인하는 게 통례다.

외국특파원들을 대상으로 한 회견은 더욱 그렇다.

회견장에서 사용할 언어까지도 친절하게 설명이 따라 붙는다.

하지만 이같은 고정관념을 깨는 사건(?)이 30일 오후 일어났다.

무대는 도쿄 히비야에 자리잡은 프레스센터 6층.주역배우는 사카이야 다이이치 일본 경제기획청 장관이고 관객은 주일 외국특파원들이었다.

예정시각을 조금 넘긴 후 회견장에 들어선 사카이야 장관은 ''인터넷박람회''라는 행사의 보따리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장관의 설명이 끝나기가 무섭게 옆에 앉은 통역은 영어로 옮겨 특파원들에게 전달했다.

"세계최초의 만국박람회는 지난 1851년 런던에서 열렸고 근대올림픽은 1896년 처음으로 시작되었습니다….오는 12월31일 막을 올리는 인터넷박람회는 세계인 누구나 참가할수 있는 사상초유의 이색 사이버박람회가 될 것입니다"

2001년 12월말까지 1년간 열리는 인터넷박람회는 일본정부가 21세기 출발을 기념하는 행사의 하나로 야심적으로 추진해온 프로젝트다.

장관의 설명은 거의 한시간동안 지속됐다.

설명이 상세했던 만큼 행사의 내용을 조목조목 파악할 수 있는 회견이었다.

그러나 이날 회견이 통상적인 기자회견과 달랐던 점은 크게 두가지였다.

참석여부를 미리 알렸음에도 불구,프레스센터는 ''긴급''이라는 단어를 박아가며 회견이 열리는 것을 누차 통보해 왔다.

더구나 국·과장급 공무원이 나오는게 일반적이었던 외신기자회견에 사카이야 장관은 통역사까지 데리고 나왔다.

외국언론에 인터넷박람회를 조금이라도 더 PR해 보려는 일본정부의 의도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일본은 90년대 정보통신전쟁에서 미국에 완패 당한 후 아시아국가들로부터도 정보후진국의 비아냥을 들어왔다.

하지만 일본은 이제 달라지고 있다.

21세기 디지털혁명의 패권을 향해 숨가쁘게 뛰기 시작한 일본의 야심은 장관까지 홍보맨으로 등장시키고 있다.

도쿄=양승득 특파원 yangs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