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경제가 어렵다고들 난리다.

이를 고려했음인지 이번에 출범한 경제팀은 "지역 균형발전"을 중요과제의 하나로 들고 나왔다.

지역 균형발전 문제가 어제 오늘 얘기가 아니고 보면 과연 지금까지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새로운 접근을 시도할지는 두고 볼 일이다.

지역 균형발전과 불가피하게 부딪히는 것은 수도권 집중문제다.

국토면적의 11.8%에 불과한 수도권에 인구의 45.9%가 집중해 있다는 것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역 총생산의 44%,제조업체의 54%,금융 예금의 66%가 수도권에 밀집해 있다.

지난 30년 동안 수도권 인구는 2.5배 증가했다.

반면 기업체수와 금융(예금)거래는 각각 73배,3백배 이상 증가했을 정도로 수도권의 경제적 편중현상은 심화되고 있다.

문제는 이것이 앞으로 개선될 가능성이 있느냐 하는 점인데 "혁신지표"역시 심각한 격차를 보여 쉽사리 예견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주요 산업집적지 45개중에서 80%,신산업 창출과 관련있는 벤처기업의 67.4%,벤처집적시설의 89%가 수도권에 집중해 있다.

이는 대학의 36.4%,공공연구소 38.8%,기업부설연구소 71.2%,민간연구개발투자의 83.1%가 수도권에 집중해 있는 것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정부가 그동안 손을 놓고 있었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수도권정비계획법상의 입지규제,공업배치 및 공장설립에 관한 법률상 입지규제,지방세법상 중과세제도 등 수도권과밀억제정책을 전개했다.

하지만 30여년이 넘도록 이같은 집중억제 정책을 폈음에도 수도권의 과밀현상은 오히려 심화됐다.

그렇다면 이것은 기존정책이 근거했던 "수도권집중억제 -> 기업의 지방이전 -> 지역의 균형발전"이라는 중앙정부 주도형의 선형적(linear) 기대효과 사슬(chain)이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봐야 할 것 같다.

산자부나 과기부 등은 이와 관련해 지방의 산업여건이나 기술혁신 인프라가 제대로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수도권 집중억제정책을 폈고,그 결과 기업의 지방 이전이나 지역경제활성화가 제한적으로 나타났다는 지적을 많이 한다.

지방에서 창업한 벤처기업이 수도권으로 역류하는 현상까지 발생하는 것도 여기서 연유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산업여건이나 기술인프라 등을 위해 다양한 정책들을 전개하고는 있는데 여기서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될 점이 있다.

문제의 지적은 옳지만 접근방식 만큼은 여전히 중앙집중식을 못 벗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중앙정부는 정책의 시혜자,지방정부는 정책의 수혜자,기업은 정책의 대상자일 뿐인 것이다.

지역의 전략산업 육성,창업보육,혁신기반이나 거점 조성 등 각 부처가 경쟁적 중복적으로 사업들을 전개하지만 그 어느 것도 지자체가 주도적으로 역할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수많은 선진국들의 성공사례를 살펴보면 이렇게 접근해서는 지역의 지속적인 산업발전과 혁신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지역의 내생적 발전동기와 지역내 합의 희생에 기초한 지자체의 주도적 역할은 대부분의 경우 결정적 성공요인이었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전략산업을 육성하든,기존산업을 구조조정하든,외부기업을 유치하든,신기술기업을 창업하든간에 지역 스스로 자신들의 의지를 담아낼 수 있는 유인책과 정책수단을 상당히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언제까지 우리의 지방이 중앙정부만 바라보게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젠 산업정책이나 혁신정책의 무게중심을 지방정부로 옮기는 문제를 본격적으로 검토할 시점에 온 것 같다.

이것은 중앙정부 차원에서 접근하는"산업과 기술의 지방화"가 아니라,"산업정책 기술정책의 지방화"를 통해 "지자체간 혁신경쟁"을 불러 일으키자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세제개편 등을 통해 지역산업과 혁신의 "주도자"로서 지자체에 걸맞는 힘을 실어줘야 한다.

이와 함께 산자부의 "지역산업진흥계획"과 과기부의 "지방과학기술진흥계획"등 각 부처의 지역관련 계획들도 지자체간 혁신경쟁을 효율적으로 촉진 보완하도록 통합 연계하는 것도 시급하다는 생각이다.

안현실 전문위원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