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홍상화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 급작스럽게 몰아닥친 IMF라는 폭풍은 사회 전체를 휘몰아치고 있었다.

사흘 전인 11월 21일 저녁 10시 경제부총리에 의해 IMF구제금융을 요청하였다는 사실이 발표되었을 때만 하더라도 그것의 심각성이 일반 국민에게 인식되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당시 사회전체에 팽배해 있던 불안감을 해소시켰다는 의미에서 일반적으로 안도감을 느끼게 했다.

그러나 IMF구제금융 요청 발표가 있었던 금요일 저녁이 지나 주말을 넘기고 월요일이 되었을 때,IMF라는 폭풍의 위력은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다른 곳이 아닌 자본주의의 전시관인 증권시장에서 그 첫 모습을 나타냈다.

회사채 금리가 17퍼센트로 치솟았고 주가는 10년 전 수준인 439포인트로 추락했다.

그날은 또한 12월 18일에 실시되는 제15대 대통령선거에 출마할 후보자 등록이 시작되는 전날이기도 했으므로 3당 후보간에 경쟁적으로 경제위기 처방전을 내세우며 열띤 논쟁을 벌이는 등 본격적인 선거 열풍이 불어닥치기 바로 직전이었다.

이런 상황 아래서 그날 오후 긴급소집된 대해그룹의 그룹사장단 회의가 진성호 회장의 주재하에,그리고 이현세 이사의 사회 아래 진행되고 있었다.

오후 2시에 시작한 회의는 3시간이 지나서야 그룹 전반에 걸쳐 조직을 축소하는 방향으로 사태 수습의 윤곽이 잡혔다.

임직원 감원을 포함하여 앞으로 3개월 내에 전반적으로 조직을 최소한 30퍼센트 축소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총체적인 안이었지 구체적으로 어떤 기준을 적용해야 할지는 결정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러나 일단 조직축소에 합의를 봤으므로 화장실도 다녀올 겸 15분간 휴회를 한 후 다시 회의를 속개하기로 했다.

여직원이 커피를 가지고 회의실로 들어섰다.

각자 앞에 커피잔을 놓았다.

긴장감이 풀어진 다소 느긋한 분위기 속에서 군 출신이며 국회의원 출신으로 대해실업의 허수아비 사장직을 맡고 있는 60대 중반의 박인호 사장이 커피를 들면서 말문을 열었다.

"요번에 IMF구제금융 요청을 발표한 그 부총리 말이오,그 사람이 소위 문민정부에서 몇 번째 부총리요?"

"일곱번째라고 합니다"

사장단 중 주유소 체인망 사업을 맡고 있는 사장이 대답했다.

"내 참 기가 차서…자가용 운전사도 새로 채용하면 6개월이 지나야 제대로 일할 수 있는데 한 나라의 각료가,그것도 나라 경제를 책임지고 있는 경제 부총리의 평균임기가 1년도 안 되니 나라 꼴이 어떻게 되겠소…"

박인호 사장이 혀를 찬 후 다시 말을 이어갔다.

"박정희 시대는 어땠는지 혹시 알고 있소? …이현세 이사,박정희 정권 시대 최형섭 장관과 남덕우 장관의 재임기간이 몇 년이었소?"

회의 탁자에서 떨어져 벽 쪽 자리에 앉은 이현세 이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시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

"확실한 연도는 자신없지만 최형섭 박사는 아마 1971년부터 한 6년 동안 과학기술처 장관을 지낸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 전에는 수년간 KIST소장으로 있었고 그 후에도 수년간 과학재단 이사장을 지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