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가 성곽(城廓)을 쌓기 시작한 것은 농경집단이 유목집단의 약탈로부터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기원전 5천년께는 이스라엘의 여리고성 같은 본격적 성곽이 등장한다.

메소포타미아 지방에서는 수메르인이나 아카드인의 기원전 4천년께 성곽도시 유적들이 발굴됐다.

우리나라의 성곽은 문헌상으로는 기원전 194년 위만이 왕검성에 도읍을 정했다는 기록에서 출발하지만 토성같은 원시적 성곽은 그보다 훨씬 전부터 등장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오랜 역사와 전통을 지닌 고도(古都)는 모두 성곽도시다.

로마 이스탄불 테헤란 베이징 파리 런던 서울도 성곽도시였다.

하지만 서울처럼 성의 흔적이 여기저기 남아 있긴 해도 대부분 세월이 흐르는 동안 전쟁으로 파괴되거나 개발에 묻혀 버렸다.

파리의 경우 성곽자리는 가로수 길이 되어 남아있다.

오히려 중소도시 가운데 성곽도시의 모습을 아직 간직해 오고 있는 곳이 더 많다.

중국 시안,프랑스 아비뇽,인도 아그라,일본 히메지,독일 로텐부르크,파키스탄 아보르,스페인 코르도바,스리랑카 갤,모로코 페즈,한국의 수원 고창 공주 등이다.

그 가운데서도 1796년 조선의 정조가 축조한 수원의 화성(華城)은 전쟁의 포화를 겪으면서도 크게 변형되지 않고 근년에 완전하게 복원돼 97년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자랑스런 문화재다.

약 5.4㎞의 성벽과 성문 장대 망루 포루는 물론 정조의 행궁(行宮)이 당시 기록인 ''화성성역의궤'' ''화성행궁의궤''에 따라 그대로 복원됐다.

그동안 수원시민이 화성에 기울인 정성과 관심은 놀랍다.

화성만큼 현대도시와 조화를 이루면서 시민과 호흡하고 있는 성곽은 없을게다.

수원에서는 지난 5일부터 20개국 성곽도시 시장들과 세계문화유산협의회 등 국제기구 관계자 6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유네스코 세계성곽도시 시장단회의''가 열리고 있다.

''도시개발 및 세계문화유산 원형보존''이 주제다.

성곽도시 보존에 대한 첫 회의가 수원시의 주도로 열린 것도 그렇지만 화성이 세계성곽도시의 모범으로 알려지게 된 게 더 뜻깊은 일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