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오전 11시,서울 종로구 광장시장.

연중 최고의 대목인 추석을 앞두고 제수용품을 사러나온 주부들로 한창 북적거릴 시간이다.

하지만 시장안은 한산하다 못해 썰렁한 느낌을 준다.

점포 곳곳에는 잡담을 나누거나 하릴없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는 상인들의 모습만 눈에 띈다.

극심한 영업부진을 겪고 있는 전국 1천여개 재래시장과 다를 것 없는 모습이다.

하지만 시장입구에 들어선 순간부터 몇몇 상인들의 가슴에 달려있는 배지가 눈길을 끈다.

백화점 매장에서나 볼 수 있는 ''스마일 배지''.

웃는 모습을 그려놓은 배지의 하단에는 ''정성껏 모시겠습니다''라는 글자가 선명히 새겨져 있다.

상가건물 위쪽에는 ''무료주차권을 드립니다''라고 쓴 대형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재래시장이 변신하고 있다.

대형 할인점과 인터넷 상거래의 확산으로 고사위기에 직면한 재래시장이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스마일배지나 무료주차권 제공은 이제 더 이상 백화점의 전유물이 아니다.

1백년 역사를 자랑하는 광장시장 같은 ''정통 재래시장''도 죽어가는 상권을 살리기 위해 ''백화점베끼기''에 적극 나서고 있다.

지난 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광장시장은 연간 5조원의 매출을 기록했었다.

하지만 지난해 매출은 전성기의 20분의 1수준인 2천여억원.

"지난해 이후 새로 문을 연 대형 할인점만 전국적으로 60개를 넘고 올해 말까지 40여개가 새로 생겨날 전망입니다.최신식 시설을 갖춘 할인점들이 싼 가격과 양질의 서비스를 무기로 기존 재래시장 고객들을 몰아가고 있습니다.배겨날 도리가 없죠.재래시장의 변신은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입니다"(광장시장 장병학 총상우회장)

지방 재래시장의 변신노력은 더욱 적극적이다.

서울보다 더 깊은 침체의 늪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전국적으로도 그 이름이 알려진 대구 서문시장의 경우 신용카드를 도입,시장내 상품구입은 물론 제휴 호텔과 식당 등에서 사용할 수 있게 했다.

또 가격표시제를 정착시키는 한편 올 연말까지 주차빌딩 1층에 소비자정보센터인 만남의 광장을 설치한다.

수원의 대표시장인 영동시장은 인근 화성과 성남 모란시장의 주변문화시설과 연계한 문화,관광벨트 개발을 추진중이다.

또 평택의 중앙시장은 주한미군 주둔지역인 점을 활용,외국인 전용 쇼핑명소로 탈바꿈시킬 계획이다.

이밖에 서울의 중부시장(오장동),경동 약령시장(청량리)등은 인터넷홈페이지를 개설해 ''사이버홍보''를 통해 상권활성화를 도모하고 있다.

유통전문가들은 재래시장의 부활을 위해선 더 과감한 변신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고려대 윤훈현 교수(경영학)는 "동대문 의류시장의 경우 현대화 대형화 집단화를 통해 세계적인 패션메카로 자리잡았다"며 "재래시장 역시 공동광고 공동구매와 같은 조직적이고 현대적인 마케팅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최철규 기자 gra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