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일의 그림읽기] (5) 박노수 '선소운(仙簫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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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소운"(종이에 수묵 채색,180x150cm)은 남정 박노수화백(73.예술원 회원)이 1955년 제 4회 국전에 출품,대통령상을 따낸 작품이다.
동양화로는 국전에서 처음 받은 최고상.
이그림은 아이보리 블랙으로 그린 인물화다.
간결한 구도지만 공간구성에 주력한 작품이다.
먹이 아닌 아이보리 블랙을 쓴 것은 검은색을 제대로 내기 위한 것이다.
먹 맛은 부드럽고 연하지만 아이보리 블랙은 강하기 때문.
남정은 여러 가지 작품이 한자리에서 경쟁하는 전시장 그림임을 감안,강하게 보이려고 흑백대비로 힘을 준 것 같다.
미인도 같은 전통적인 인물화 보다는 현대적인 맛이 돋보이는 인물화,그것도 좌상을 시도한 것으로 여겨진다.
굳이 한마디 덧 붙인다면 남화 와 북화의 장점을 한 화면에서 녹여낸 것이다.
타이틀을 "선소운"이라고 한것도 문화적 취향이 아닌가 싶다.
이 그림 어디에도 "신선의 퉁소"는 없다.
신선의 피리 소리를 듣고 있는 듯한 여인의 운치를 분위기로 내세웠다면 필자의 지나친 억측일까.
남정은 해방 1세대 작가로 일찍 자기의 작품세계를 만들어 낸 "선비화가"다.
인생을 고고하게 살아가려는 "딸각발이"정신이 그의 그림 속에서 맥맥히 숨쉬고 있다.
1960년대 이후 남정 그림에서는 마스코트처럼 선비가 나타난다.
그의 정신세계를 은근히 드러낸 것이다.
꿋꿋한 자세로 세상을 살아가는 선비의 높은 기개를 보이자는 의도다.
고독할이 만큼 개결한 그의 생활태도가 차원높은 화격으로 표현되고 있다.
남정의 그림에는 뛰어난 구성력이 돋보인다.
바위와 같은 엄격한 구도와 치밀하게 계산된 공간 개념이 보는 사람의 눈을 시원하게 해준다.
국전 초기(1회~10회) 대통령상 수상작은 6번이 인물화였다.
이때 미술계에서는 "국전에서 대통령상을 타려면 인물화를 그려야 한다"는 말이 생겨날 정도였다.
"선소운"은 좌상 인물화여서 더욱 화제가 되었다.
인물화 중에서도 좌상을 그려야 대통령상을 받는다는 유행어까지 탄생했다.
실제로 6회 수상작이 임직순 화백의 "좌상"이었고,7회 수상작도 장리석 화백의 좌상인 "그늘의 노인"이었다.
"선소운"은 이야기가 많은 그림이다.
1960년 4.19가 일어났을 때 당시 자유당 정권의 실력자 였던 만송 이기붕집에 걸려있던 남정의 작품 한점이 불탔다.
이때 "선소운"이 탔다는 소문이 전해졌다.
만송은 미워도 그림이 무슨 죄가 있느냐고 불탄 그림을 안타까워 했다.
그런데 만송집에서 불에탄 그림은 "선소운"이 아니고 5회 국전 특선작인 남정의 "월향"이었다.
"월향"도 여성을 그린 인물화여서 "선소운"과 비슷했기 때문에 잘못 알려진 오보였다.
"선소운"은 경무대(현 청와대)에 고이 모셔져 있다가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으로 이관,수장고에 들어있다.
지금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타에서 박노수 회고전이 열리고(9월1일~19일)있지만,유감 스럽게 그 화제의 "선소운"은 눈에 띄지 않는다.
월간 art 발행인
동양화로는 국전에서 처음 받은 최고상.
이그림은 아이보리 블랙으로 그린 인물화다.
간결한 구도지만 공간구성에 주력한 작품이다.
먹이 아닌 아이보리 블랙을 쓴 것은 검은색을 제대로 내기 위한 것이다.
먹 맛은 부드럽고 연하지만 아이보리 블랙은 강하기 때문.
남정은 여러 가지 작품이 한자리에서 경쟁하는 전시장 그림임을 감안,강하게 보이려고 흑백대비로 힘을 준 것 같다.
미인도 같은 전통적인 인물화 보다는 현대적인 맛이 돋보이는 인물화,그것도 좌상을 시도한 것으로 여겨진다.
굳이 한마디 덧 붙인다면 남화 와 북화의 장점을 한 화면에서 녹여낸 것이다.
타이틀을 "선소운"이라고 한것도 문화적 취향이 아닌가 싶다.
이 그림 어디에도 "신선의 퉁소"는 없다.
신선의 피리 소리를 듣고 있는 듯한 여인의 운치를 분위기로 내세웠다면 필자의 지나친 억측일까.
남정은 해방 1세대 작가로 일찍 자기의 작품세계를 만들어 낸 "선비화가"다.
인생을 고고하게 살아가려는 "딸각발이"정신이 그의 그림 속에서 맥맥히 숨쉬고 있다.
1960년대 이후 남정 그림에서는 마스코트처럼 선비가 나타난다.
그의 정신세계를 은근히 드러낸 것이다.
꿋꿋한 자세로 세상을 살아가는 선비의 높은 기개를 보이자는 의도다.
고독할이 만큼 개결한 그의 생활태도가 차원높은 화격으로 표현되고 있다.
남정의 그림에는 뛰어난 구성력이 돋보인다.
바위와 같은 엄격한 구도와 치밀하게 계산된 공간 개념이 보는 사람의 눈을 시원하게 해준다.
국전 초기(1회~10회) 대통령상 수상작은 6번이 인물화였다.
이때 미술계에서는 "국전에서 대통령상을 타려면 인물화를 그려야 한다"는 말이 생겨날 정도였다.
"선소운"은 좌상 인물화여서 더욱 화제가 되었다.
인물화 중에서도 좌상을 그려야 대통령상을 받는다는 유행어까지 탄생했다.
실제로 6회 수상작이 임직순 화백의 "좌상"이었고,7회 수상작도 장리석 화백의 좌상인 "그늘의 노인"이었다.
"선소운"은 이야기가 많은 그림이다.
1960년 4.19가 일어났을 때 당시 자유당 정권의 실력자 였던 만송 이기붕집에 걸려있던 남정의 작품 한점이 불탔다.
이때 "선소운"이 탔다는 소문이 전해졌다.
만송은 미워도 그림이 무슨 죄가 있느냐고 불탄 그림을 안타까워 했다.
그런데 만송집에서 불에탄 그림은 "선소운"이 아니고 5회 국전 특선작인 남정의 "월향"이었다.
"월향"도 여성을 그린 인물화여서 "선소운"과 비슷했기 때문에 잘못 알려진 오보였다.
"선소운"은 경무대(현 청와대)에 고이 모셔져 있다가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으로 이관,수장고에 들어있다.
지금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타에서 박노수 회고전이 열리고(9월1일~19일)있지만,유감 스럽게 그 화제의 "선소운"은 눈에 띄지 않는다.
월간 art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