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홍상화

진성호가 레인보우 클럽에 들어서자,창가 옆 테이블에 앉아 있던 황무석이 자리에서 일어나는 모습이 보였다.

그는 황무석과 마주보고 앉으며 무의식중에 이미지가 두 달 전까지 앉아 있던 피아노 쪽으로 시선을 보냈다.

"이미지씨는 잘 지내지요?"

황무석의 말에 진성호는 얼른 시선을 거두면서 고개만 끄덕였다.

황무석과의 대화에 이미지를 끌어들이고 싶지 않았다.

황무석은 사업얘기를 하기에는 그 방면에 두뇌회전이 빠르므로 적절한 대화 상대지만 아끼는 여자에 대해서는 얘기할 상대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회장님은 이번에 꼭 2세를 갖기를 바랍니다.

임신소식을 이곳에서 일하는 이미지씨 친구에게서 들었습니다"

황무석이 먼저 알은척을 했다.

진성호는 당황하는 빛을 감추며 차분한 눈길로 그를 쳐다보았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비밀로 해주세요.

아직 어머니만 알고 있어요"

"어머님이 아주 기뻐하시겠습니다"

"기뻐하시지만 걱정도 되지요.

…세브란스 병원 의료진으로부터 지난 금요일 연락을 받았습니다.

아내가 의식을 회복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아내가 다시 충격을 받을까봐 장모님 외에는 아직 면회가 금지되어 있어 나도 직접 확인은 못했지만요"

황무석의 안색이 갑자기 파랗게 질렸다.

진성호는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다시 말을 이었다.

"그 즉시 어머니에게 아내가 의식을 회복하고 있다는 소식을 알려드렸어요.

그랬더니,이미지가 아이를 낳아주기만 하면 어머니가 키우겠다는 거예요.

아내가 자식을 받아들일 때까지요.

그래서 어머니는 이미지를 만나 설득하겠다고 고집하세요"

"그렇군요…"

황무석이 더듬거리며 고개를 떨구었다.

황무석이 평소에 보여주던 활력과 자신감은 온데간데없고 방금 집안의 비보를 접한 듯한 태도였다.

진성호는 아내의 의식회복 가능성이 황무석에게 왜 그런 비보가 될 수 있는지 의아했다.

아마도 이미지가 자신에게 버림받으리라고 황무석이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었다.

이미지는 자식 때문만이 아니라 이미 진성호의 인생항로에 반드시 동반해야 할 여인이 되었다는 것을 황무석이 알 리가 없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아 참,황 부사장님,사표를 돌려받으십시오.황 부사장님은 회사에 꼭 필요한 분입니다.

이 때문에 만나자고 한 겁니다"

진성호가 안주머니에서 황무석이 제출한 사표를 건네주며 말했다.

"아닙니다.

절대로 다시 받을 수 없습니다.

신중히 고심한 끝에 결정한 일입니다"

황무석이 두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그럼 무슨 일을 하시게요?"

"지금 맡고 있는 골프장 관리에만 전념해볼까 합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이정숙 교수님께서 의식이 회복되고 있다니 정말 다행입니다"

황무석이 이제는 밝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러나 진성호의 눈에는 왠지 모르게 그의 표정이 매우 어색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