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어떻게 오늘 이렇게 끝내셨습니까.

40년 넘게 스승으로 섬긴 어르신께서 이렇게 세상을 놓으시다니,부음을 받고 저는 경황이 없는 중에도 옷깃을 여미며 무릎부터 꿇었습니다.

제가 선생님께 마지막으로 바칠 수 있는 것은 평소 선생님에 대해 취해온 태도 그 한가지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선생님께서 마치 "작가는 이렇게 끝내는 것"이라는 모범처럼 세상을 놓으신 것은 아무 것과도 견줄 수 없는 일 두가지를 후학들에게 물리신 것이었습니다.

하나는 선생님을 다시 뵈올 수 없는 슬픔이고,하나는 유종의 아름다움입니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아름다운 것은 한평생 변치 않으신 그 "소나기"속 "아이"의 티없는 동심이셨습니다.

자고로 이땅에서 명멸한 선비와 선비정신의 모습이 다름아닌 그 동심의 유지였을진대,선생님의 초상은 진정한 선비의 초상이었습니다.

문단의 후생들이 섬기고 받들어 마땅한 작가상의 고전이었던 것입니다.

우리 문단으로 말하면 그보다 더 큰 은고를 언제 다시 입어볼 수 있겠습니까.

저는 선생님을 교과서로 하여 문학수업을 했던 수많은 후생 중의 하나일 뿐입니다.

그러나 선생님 댁의 복숭아 향기 그윽한 그 도소주의 사랑은 어느 제자보다도 황홀했습니다.

선생님께서 삼가신 뒤로 몸소 큰 잔에 가득가득 부어주시던 그 맛은 또 어떠했겠습니까.

하지만 저는 술맛보다도 번번이 술병을 혼자 다 비울 때까지 지켜보시며 즐거워하셨던 그 대리만족의 파안대소를 더욱 소중하게 새기며 행복을 실감하곤 했습니다.

이날토록 아무 빚 하나 남기지 않고 세상을 끝내신 선생님의 명도행은 걸음걸음이 얼마나 한갓지실까요.

아아,이 불초한 후학은 다만 가만히 흐르는 눈물로 선생님의 명복을 빌 따름입니다.

/ 이 문 구 소 설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