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홍상화

황무석의 핸드폰을 통해 최형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형식이니? 나야"

"아저씨,어쩐 일이세요?"

"지금 혼자야?"

"네"

"어디야?"

"집이에요"

"그럼 30분 후에 집으로 갈게.급히 의논할 일이 있어"

"제가 나갈게요"

"아니야.내가 집으로 갈게.그쪽에 갈 일이 있어"

황무석은 공중전화 부스를 나와 지나가는 택시를 잡았다.

최형식의 집이 있는 불광동 방면으로 가는 택시 안에서 황무석은 최형식이 이정숙의 의식회복 소식을 듣고 어떻게 반응할지 궁금했다.

중국에서 북한에 있는 아버지를 만나고 온 후부터 최형식이 겉보기에는 놀랍게 달라졌음을 알 수 있었다.

그가 과거에 최형식을 대하면서 항상 느꼈던 사회지도층을 향한 증오심은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아버지를 만나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자세히 알 수 없지만,증오심이 없어졌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그리고 증오심은 인간의 다른 감정을 다 몰아내버리게 되어 있는데,최형식의 경우 증오심이 없어지면서 긍정적인 감정이 다시 돌아온 듯했다.

황무석이 탄 택시는 세브란스 병원을 막 지나쳤다.

그는 거의 무의식적으로 택시기사에게 세워달라고 했다.

그리고 뚜렷한 목적도 없으면서 택시에서 내렸다.

황무석은 휑하니 떠나는 택시의 뒤꽁무니를 보면서 이정숙이 입원해 있는 곳이 세브란스 병원임을 깨달았다.

그는 병원입구 쪽에서 잠시 머뭇거리다가 구내로 들어갔다.

그리고 입원실 병동으로 걸어가면서 방금 전 택시에서 내린 이유를 알았다.

이정숙의 병세를 확인해 의식회복 가능성이 어느 정도인지 알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병석에 누워 있는 이정숙의 겉모습만 봐서는 알 수 없겠지만,병원 관계자에게서 어떤 정보든 얻을 수 있으리라 싶었다.

그의 정체가 나중에라도 밝혀지면 지나는 길에 들렀다고 하면 될 것이다.

그는 계속해서 발을 옮겨놓았다.

그때 마주 오는 한 여인의 모습이 그의 시야에 들어왔다.

몹시 눈에 익은 여인이었다.

다음 순간 그 여인이 이미지라는 것을 알아챘다.

황무석은 급히 몸을 숨기려 했으나 그녀는 이미 그를 알아본 듯했다.

두 사람은 순간 서로 마주 쳐다보았다.

이미지가 더 당황한 태도였다.

"이미지씨 아니에요?"

황무석이 그녀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황 선생님…어쩐 일이세요?"

이미지는 더듬거렸다.

"친구가 이곳에 입원해 있어서 문병차…"

"저도…"

"건강하지?"

황무석이 이미지의 아랫배에 시선을 주었다.

"네…그럼 안녕히…"

이미지가 고개를 숙이며 그를 지나쳤다.

황무석이 몇 발자국 걸어가다 뒤돌아보았다.

이미지도 동시에 뒤돌아보았다.

서로의 시선이 순간 딱 마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