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아시아개발은행(ADB)이 기관 사명을 경제개발 촉진에서 빈곤퇴치로 전환한 데 이어 지지난 주엔 국제연합(UN)이,그리고 또 지난주엔 세계은행이 각각 빈곤퇴치를 향후 중점 과제로 꼽아 주목된다.

특히 개도국 내 경제 및 정치 엘리트들의 이익만 대변한다는 비난을 사 왔던 세계은행이 지난 12일 발표한 연례 "세계개발보고서"에서 지금까지의 "경제성장 제일주의"에서 벗어나 새로운 빈곤 극복 전략이 필요함을 촉구한 것은 국제사회에서 일대 사건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같은 세계은행의 대변신에 대해 국내 일각에서는 세계은행이 "세계화 전도사"에서 "세계화 회의론자"로 선회하고 있다는 성급한 진단까지 내놓고 있다.

과연 그러한가? 빈곤문제에 대한 세계 선각자들의 새로운 접근방식에 대해 알아본다.

<>세계은행의 변화 실상:우선 세계은행이 세계화에 회의를 품기 시작했다는 일부의 진단은 잘못된 것이다.

세계은행은 오히려 "지속 가능한 세계화"의 가장 큰 걸림돌로서 빈곤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것으로 분석된다.

이는 제임스 울펜손 총재가 최근 미국 아스펜재단 창립 50주년 기념식에서 행한 연설(본지 9월15일자 6면 참조)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그는 여기서 세계화는 수천년 전부터 지속돼 왔던 거스를 수 없는 인류의 대추세로 전제하고 이의 본질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사람들을 "우물안 개구리"로 규정했다.

그가 걱정하는 것은 세계화가 너무 진척되는 것이 아니라,세계화로부터 가장 큰 이득을 얻는 선진국 사람들과 개도국 엘리트들이 그 피해자의 고통을 방치 또는 심화시킴으로써 세계화가 좌초되고,그 화가 자신에게까지 미치게 될 가능성이다.

세계화에 대한 세계은행의 신봉은 흔들림 없다.

세계은행은 이번 연례 보고서에서 1820년 세계 전체 인구의 4분의3이 빈민이었던 반면 지금은 그 비중이 5분의1로 줄었음을 지적하며 그 공을 세계화로 돌리고 있다.

실로 "렉서스와 올리브 나무"의 저자,토마스 프리드만 뉴욕타임즈 칼럼니스트도 지적하고,세계은행 보고서 통계로도 입증되듯이 세계화는 특히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지역의 빈곤 문제를 크게 완화한 주역이다.

<>빈곤퇴치의 패러다임 이동:세계은행은 창립이래 초지일관,개발도상국들의 빈곤문제 해소를 최대 과제로 삼고 있다.

따라서 세계은행이 최근 변화를 보이고 있다는 것은 사명이 바뀌어서가 아니라,전략과 사고방식이 바뀐 때문이다.

10년 전 세계은행의 빈곤퇴치 전략은 두가지였다.

하나는 노동집약적산업 육성을 통한 고도경제성장이고 다른 하나는 보건 교육 사회적 안전망 강화 등 사회적자본의 확충이다.

그런데 이번에 새롭게 한 가지가 추가됐다.

이른 바 빈민들에 대한 권능부여(empowerment)다.

이는 앞으로 빈곤퇴치를 위해 해당국 정부를 거치지 않고 국제기구가 직접 다른나라 빈민들을 구제하는 방식을 택하겠다는 전략 변화를 뜻한다.

이는 또한 더 이상 각국 정부와 엘리트들에게 모든 것을 맡겨 놓을 수 없다는 패러다임 시프트,즉 거대한 사고방식의 변화를 의미하기도 한다.

이는 앞으로 국제질서에 실로 심대한 변화를 예고하는 사안이 아닐 수 없다.

각국 내 인권보호문제와 더불어 이제는 각국 내 빈부격차와 빈곤사태에 대해서도 해당 국가정부의 독점적 권한,즉 주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있다는 중대한 뜻을 내포하고 있다.

<>권능부여의 구체적 의미:그러면 국제기구가 어떻게 해당국 정부의 거시경제 정책을 통하지 않고서도 타국 내 빈민들을 구제할 수 있단 말인가. 세계은행은 어떤 복안을 갖고 있는 것일까.

이와 관련해서는 본지 9월5일자 42면에 실렸던 "빈곤퇴치의 새 모델,그래민뱅크"라는 기사와 내일 자 같은 면에 실릴 "프래닛파이낸스"등에서 소개된 "마이크로 대출제도"가 핵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