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비즈니스를 배우는데 체면과 나이를 따질 필요가 있습니까"

주광일(57) 국민고충처리위원장은 요즘 e비즈니스를 배우는데 재미를 붙였다.

뒤늦게 시작한 인터넷 공부지만 새로운 세상을 만나는 기쁨에 학창시절로 돌아간 기분이라고 그는 주변 사람들에게 말한다.

주 위원장은 전경련 부설 국제경영원이 디지털시대의 경영을 선도하는 최고경영자 육성을 목표로 9월1일 개강한 "e비즈니스 최고경영자과정"에 등록, 다니고 있다.

추석연휴가 끝난 14일 오후 9시.

서울 여의도 전경련 회관 3층 e비즈니스 강의실은 50,60대 나이 지긋한 신사들의 e비즈니스 학습열기로 후끈했다.

수강생들은 주로 정부기관 대기업 금융회사 회계법인 법률회사 등에서 활동하는 사회지도층 인사들.

이번 학기에는 주광일 위원장을 비롯, 전춘우 대한지적공사 사장, 김승동 주택은행 부행장 등 48명이 입학했다.

변호사였던 윤영철 헌법재판소장도 당초 이 과정에 입학을 신청했으나 소장으로 임명됨에 따라 입학을 다음 학기로 연기했다.

한영섭 사무국장은 "지난 학기에는 기업체 임원들이 대부분이었으나 이번 학기에는 사회적 관심도가 높아지면서 사회 중진급 인사들의 참여가 많아졌다"고 말했다.

이들 수강생들은 16주동안 매주 목요일 오후 6시50분부터 10시까지 세시간가량 교육받는다.

인터넷과 전자상거래 쇼핑몰 구축 실습과정 등 나이에 비춰 결코 쉽지 않은 과목들이다.

그러나 배우겠다는 의지와 자세는 주위 관계자들도 놀랄만큼 대단하다.

전주에 소재한 전인석유의 이현도 사장은 전주에서 5시간 걸려 통학한다.

밤늦게 교육이 끝나면 서울의 아들집에서 잠시 눈을 붙였다가 다음날 새벽에 전주로 내려가는 열성파다.

바빠서 도저히 수업시간을 낼수 없는 일부 인사들은 개인과외를 받기도 한다.

동양물산기업의 김희용 부회장과 전경련 손병두 상근부회장은 사무실과 집에서 컴퓨터 개인교습을 받는다고 한다.

물론 늦깎이 학습이라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도 있다.

그럴 때는 일부 동료의 컴맹탈출 경험담이 활력을 불어 넣어준다.

CJ코퍼레이션의 천주욱 대표는 그런 점에서 노장수강생들에게 인기다.

컴퓨터를 전혀 모르던 시절부터 하나하나 배워 무역사이트를 개설하기까지의 체험담은 컴퓨터에 대한 두려움을 가진 노장 수강생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준다고.

서울 오케스트라의 하성원 상임지휘자는 지난 7월 제주신라호텔에서 열린 전경련 최고경영자 하계세미나에서 연주중간에 "컴맹이었던 제가 컴퓨터를 배우고 나서부터 노트북으로 하루 일과를 점검하고 정보를 검색하면서 새로운 세상을 살고 있다"고 말해 청중들의 박수를 받기도 했다.

수강생들은 과정이 끝나면 기업체의 정보화 리더로서 활약한다.

(주)한화의 이순종 사장은 외환위기에서 성공적인 구조조정으로 한화의 주력사업인 화약부문을 적자에서 흑자로 전환시킨 주목받는 전문경영인.

국제경영원 e비즈니스 과정을 이수한 그는 현재 한화의 e비즈니스를 총괄하는 리더로 활동중이다.

(주)효성의 변중석 감사는 e비즈니스 전략과정을 이수하면서 배운 지식을 토대로 효성의 기업구조를 e비즈니스 중심으로 혁신했다.

그는 "닥쳐온 상황이 복잡할수록 최고경영자는 변화의 흐름을 이해하고 진두에서 지휘하는 역량과 추진력을 갖추기 위해 부단히 배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제경영원의 김성훈 차장은 "e비즈니스 경영환경에서 경쟁의 성격은 시스템간 경쟁을 넘어 리더간 경쟁으로 변모해 가고 있다"며 "우리 사회의 지도급 인사들이 새로운 경영패러다임에 적응하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을 보면 젊은 사람으로서 든든한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인터넷 증권거래와 정보검색을 강의하는 전문강사 김미현(39) 강사는 "컴퓨터에 대한 막연한 괴리감을 떨치려는 용기와 첨단 기능을 습득하려는 수강생들의 의지가 대단하다"고 전했다.

e비즈니스 최고경영자과정을 최고령(72)으로 수료한 한 중견기업의 대표는 "무엇보다 손자와 얘기가 통하고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정보화 교육을 받은 뒤 16세 손자와 함께 컴퓨터 신기종이나 유용한 홈페이지에 대해 정보를 나누고 밤늦게까지 새로운 사이트를 찾을 때가 가장 즐겁다고 자랑스러워 했다.

정구학 기자 c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