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계장부를 조작해 적자를 흑자로 처리한 뒤 은행으로부터 거액을 대출받은 부도덕한 기업주에게 사기죄를 적용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제3부(주심 이규홍 대법관)는 19일 이같은 수법으로 은행에서 2백41억원을 빌려 쓴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된 H건설사 대표 홍모(44)씨에 대해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사기죄 부분에 유죄를 인정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은행이 자체적으로 신용조사를 했지만 홍씨가 결산서 등을 허위 작성해 신용도와 상환 가능성을 잘못 판단할 수밖에 없었던 만큼 사기죄를 적용한 원심판단은 정당하다"고 밝혔다.

이번 판결은 23조원에 달하는 분식회계를 한 사실이 드러나 주식회사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외감법) 위반 혐의로만 고발된 김우중 전 대우회장 등에게도 경우에 따라서는 사기죄를 적용할 수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어서 주목된다.

외부감사법 위반을 적용했을 때의 형량은 징역 3년이하(또는 벌금 3천만원이하)지만 특경가법상 사기죄의 경우는 이득액이 50억원 이상이면 무기 또는 5년 이상,50억원 미만이면 3년 이상의 무거운 처벌을 부과하게 돼 있다.

홍씨는 95∼97년도 결산서를 조작,2백여억원의 적자를 50여억원의 흑자로 꾸민 뒤 D은행에서 2백41억원을 부당 대출받은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김문권 기자 m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