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는 조선시대에 왕명을 출납하던 국왕의 비서실격인 승정원에서 날마다 취급한 문서와 사건을 기록한 것이다.

역대 국왕의 하루 일과와 지시 명령,행정기관의 보고,국정회의,인사발령,상소자료까지 국가의 모든 기밀이 망라돼있다.

승정원 제도의 기원은 고려초 성종시대까지 올려잡을 수 있으나 ''조선왕조실록''에는 정종2년(1400)에 처음 승정원이란 명칭이 나타난다.

하지만 도승지를 비롯 6명의 승지로 조직된 승정원제도가 자리잡힌 것은 세종15년(1433)의 일이다.

개국초부터 기록했다는 ''승정원일기''는 현재 인조 원년(1623)부터 융희4년(1910)까지 조선후기 2백88년간의 일기 원본 3천2백43책(국보303호)만이 서울대 규장각에 남아있다.

광해군 이전의 일기는 임진왜란때 불타버렸다.

또 현재 남아 있는 일기도 1624년 ''이괄의 난''과 고종때 일어난 두차례의 화재로 1747년,1888년,1890년 각각 다시 작성한 것이 9백여권에 이른다.

이처럼 다시 작성한 것이긴 해도 ''일기청''을 따로 두어 조정의 관보,각 기관의 사료,승정원관료들의 개인 일기 등을 섭렵한 것이어서 오히려 전보다 더 충실한 기록이 됐다는 것이 학자들의 평가다.

''승정원일기''는 필사본이다.

또 사관이 쓴 것을 뒤에 다시 편찬한 사료가 아니라 그대로 적은 1차사료다.

4백72년간의 기록인 ''조선왕조실록''이 8백88책 5천4백만자이지만 ''승정원일기''는 2백88년간의 기록이긴 해도 3천2백43책,2억4천2백50만자나 되는 방대한 기록물이다.

세계적으로 알려져 있는 중국의 ''황명실록(皇明實錄)''은 2천9백64책이나 돼도 모두 1천6백만자에 지나지 않는다.

''25사(二十五史)''도 4천만자일 뿐이다.

문화재청이 ''승정원일기''를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받기 위해 유네스코에 신청서를 내기로 했다는 소식이다.

97년 ''훈민정음'' ''조선왕조실록''에 이어 우리 문화재중 또 하나의 인류공동 기록유산이 생길 것 같다.

세계 최초의 목활자본 ''무구정광대다라니경'',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본 ''직지심체요절''등 아직 후보는 수두룩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