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곳에서 마주치는 두려움은 경험하기전의 일시적 고통일 뿐.미지의 세상과 손을 잡는 순간 두려움은 어느새 가벼운 흥분으로 바뀐다.

필리핀 제2의 도시 세부에서 보낸 한때가 그랬다.

다음 행선지가 여행객을 재촉하지 않는 곳,그저 현재의 시간과 공간에 나를 맡기고 싶은 곳이다.

세계 각국에서 이곳을 찾은 신혼부부들은 둘만의 밀애를 즐긴다.

실눈을 뜰 수 밖에 없도록 눈부신 백사장,깊이에 따라 물색이 다른 바다,등짝을 따갑게 태우는 태양.이국의 풍광에 압도된 휴양객들은 한참만에야 바다와 화해를 시도한다.

미지근한 바닷물은 살갗과 금세 일체가 된다.

파도는 키를 잔뜩 낮춘채 다가선다.

물안경과 숨대롱을 착용하고 "스노클링"을 시도한다.

형형색색의 산호,그 사이를 휘젓는 열대어들과 친구가 된다.

"수상 모터사이클" 제트스키를 타고 연두색 물위를 지나 검록색 바다로 나아간다.

파도 연봉들이 좀 더 큰 산맥들로 다가서면 더럭 겁이 난다.

그러나 "파도산맥"을 한번,두번,세번 넘으면 두려움은 잦아들고 신바람이 난다.

필리핀 전통목선인 방카에 몸을 싣고 항해해도 마찬가지다.

리조트로 돌아온 후 수영장에서 독서와 낮잠을 청하면 세상시름은 잠시 사라진다.

세부는 마닐라에서 남쪽으로 항공기로 1시간20분정도 떨어진 "남부의 여왕"으로 불리는 섬.항공 해상교통요충지이자 상공업 중심지이지만 휴양지로도 각광받는다.

과거 중국인과의 상거래 중심지였다가 스페인통치를 3백여년간 받았다.

스페인인들이 건설한 산페드로 요새,16세기에 건축한 필리핀 최초의 산토니뇨성당 등 스페인 유적들이 많다.

그런데 양철지붕을 이고 있는 교회들은 특이하다.

학생들이 책가방을 여행가방처럼 끌고 다니거나 지프를 개조한 자동차 지붕위에 사람들이 위태롭게 앉아가는 광경도 희한하다.

갯벌위에 뿌리내린 거목도 이채롭다.

세부부속섬인 막탄에는 고급 리조트들이 즐비하다.

샹그리라,마리바고블루워터,플랜테이션베이 등이 그것.세부국제공항에서 가깝고 각종 레포츠 시설을 갖췄다.

막탄섬은 세계최초로 세계를 일주한 마젤란이 이곳의 라푸라푸 추장에게 살해된 비운의 장소.하지만 라푸라푸 추장은 필리핀인들로부터 최초의 반식민 운동가로 추앙받고 있다.

막탄과 마주하고 있는 보홀섬은 초컬릿힐과 길다란 해변,스노클링과 스쿠버다이빙의 명소다.

초컬릿힐은 원뿔형 초컬릿 모양의 언덕들에서 유래된 지명.지리학자들도 왜 이런 형태를 갖췄는지 정확히 설명하지 못한다.

그저 토사위 석회암이 풍화된 것으로 추정할 뿐.이 언덕들은 3월부터 5월까지는 초컬릿색으로 변하며 나머지 절기에는 연녹색 나무숲으로 치장한다.

보홀섬에서 배를 타고 강을 거슬러 올라가며 점심식사를 해볼만하다.

강주변에 열대 식물들이 자아내는 풍치를 만끽할 수 있다.

주변 바닷속에서는 "시워커"(물속에서 숨쉴 수 있도록 만든 특수헬멧)로 해저세계를 구경하는 상품이 인기다.

세부(필리핀)=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