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하나.

이번 가을에 아파트를 좁혀 이사해야 한다는 친구가 푸념을 한다.

어서 정리해 짐을 싸야 할텐데 도대체 물건들을 어떻게 처리하면 좋을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식구는 단촐하게 세 명뿐인데도 방 네개와 식당,거실 모두가 빈 공간이라곤 없이 무엇인가로 가득 차 있다.

그 중에서 그녀가 가장 처치곤란이라고 느끼는 것은 문간방에 쌓여있는 남편의 물건이라고 한다.

대부분 유행이 지난 전자기기인데,장만할 때의 값을 생각하면 엄청나지만 지금은 오히려 처분하는데 돈을 들이지 않으면 안될 정도의 구식도 있다는 것이다.

과감하게 버리지 그래?

순진하게 내가 대꾸하자 그녀는 정색을 한다.

그랬다간 난리가 날 걸.

그게 다 그 사람 장난감인 거 있지.

옛날에 차가 남자들의 장난감이었듯이 말야.

이야기 둘.

새벽녘 침실 창가가 시끄럽다.

잠에서 건성 깬 귀에 들려오는 말은 집을 나가라느니,못살겠다느니 하는 피붙이인 사람들끼리 주고받는 극단적인 내용들이다.

화들짝 잠을 깬다.

이웃집 고교생이 외박을 했고 엄마는 학교공부는 뒷전에 두고 무슨 짓이냐고 꾸지람을 하는데 아이는 집에 초고속 인터넷만 깔아줬다면 왜 PC방에서 밤을 샜겠느냐는 볼멘소리를 내지르고 있다.

엄마는 화를 낸다.

인터넷에서 밥이 나와 옷이 나와?

뭐 생기는 게 있다고 정신을 팔아?

아이는 엄마는 무식해서 상대가 안 된다,정 그러면 집을 나가버리겠다고 협박한다.

잠결에 나는 실소한다.

밥이 나와,옷이 나와….

이야기 셋.

텔레비전 화면 가득 신부대기실에서 신부 입장을 기다리고 있는 여자아이들이 보인다.

신부의 친구들은 모두 멋진 신랑감을 얻은 신부를 부러워하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구석에 박혀있는 한 여자아이의 품에서 전화벨소리가 나고 신부를 동경하던 여자아이들의 시선이 일제히 최신형인 휴대 전화기로 쏠린다.

은근히 뻐기는 표정으로 그 여자아이는 신부보다 더 나를 돋보이게 해주는 휴대폰이라는 멘트를 한다.

인간의 특성을 놀이하는 것으로 정의한 말이 생각난다.

인간의 새끼는 다른 동물의 새끼보다 호기심이나 장난이 더욱 두드러지는데 그 특성은 어른이 돼도 쉽게 없어지지 않는 모양이다.

물론 어른이 되면 먹고 사는, 매우 힘들고 어려운 일로 제법 진지한 표정을 짓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먹고 사는 일 이상의 어떤 것으로 호기심이나 흥미를 만족시키려고 끊임없이 틈을 엿본다는 느낌이다.

어쩌면 그것이 문화일지도 모른다.

밥이나 옷이라는, 사는 데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그것이 없다면 사는 게 너무 심심하고 삭막해져서 도저히 살맛이 안 나는.

그런데 그것이 사는 일에 문제를 일으키지나 않을까 하고 걱정할 때가 있다.

말하자면 일상생활로서 기본적으로 해야할 일을 모두 제쳐두고 오로지 놀이에만 몰두하는 청소년을 바라보는 것 같은 심정이 되는 것이다.

아마도 사람이 살아가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여러 활동일 것이다.

먹을 거리를 제대로 해결해 몸을 채우고,그 다음에는 주변 인간과 사랑을 주고받고 제대로 된 사회관계를 형성해 마음을 채워야 한다.

그런 다음에야 비로소 놀이가 인간을 인간답게 채워줄 것이다.

심리학자들은 말한다.

장시간 인터넷에 빠져 놀이하는 사람 가운데 어떤 경우는 중독이 되고 어떤 경우는 중독이 되지 않는 건,그 사람이 주변 인간들과의 관계를 어떻게 하고 있느냐에 따라 다르다고.

말하자면 인간 관계가 돈독해 심리적으로 안정돼 있는 사람은 중독될 확률이 낮다는 것이다.

세상이 번잡해져 따라가기가 힘들어질수록 톨스토이처럼 사람이 사는데 무엇이 필요한가를 생각해 본다.

간단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생명을 유지한다는 것이고,그리고 사랑일테고,그 다음에야 비로소 놀이일 것이다.

그런데 요즘은 놀이가 생존 조건 다음의 것이라는 사실을 명확하게 인식하지 못하면서 사는 게 우리의 문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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