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감시대] (172) 제2부 : IMF시대 <3> 폭풍 후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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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홍상화
황무석은 자신의 놀란 표정을 겉으로 나타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10억이 아니더라도 2억만 주세요. 2억 중 전번에 제가 아버지 만나러 중국 갈 때 주신 천만원은 빼고 1억9천만원만 주시면 돼요…"
그렇게 말하는 최형식의 시선이 자신의 얼굴에 집요하게 머물고 있음을 황무석은 느꼈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또한 잘 알고 있었다.
협박하는 자를 이기는 유일한 방법은 그것을 협박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협박하는 자를 적으로 만들지 않아야 한다고 황무석은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그렇지 않으면 협박은 끝이 없을 것이고 그를 영원한 적으로 만들게 된다.
"1억9천만 원은 너무 적은 돈이야.언젠가 때가 되면 너에게 주려고 한 돈이 있어.5억이야.그 돈으로 일단 아파트부터 옮기도록 해봐.IMF사태가 시작됐으니 아파트값이 엄청나게 내려갈 거야"
황무석이 미소지으며 말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전번 중국 갈 때 천만원 준 것은 여비에 쓰라는 거였어.아버지에게 주라는 돈이 아니야.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어….내일 오전 11시경 우리 집으로 와 정태엄마를 만나. 5억 보증수표를 봉투에 넣어 보관하고 있을 거야"
황무석이 소파에서 일어났다.
최형식은 무엇에 홀린 듯 정신 나간 표정을 짓고 있었다.
황무석이 서너 발자국 문 쪽으로 옮겼을 때에야 최형식은 정신이 돌아온 듯 얼른 일어나 황무석보다 앞서가 문을 열었다.
황무석이 그를 지나쳐 문을 나서기 전 최형식의 어깨를 다독거려주면서 입을 열었다.
"아까 내가 말한 거 잘 생각해봐.내 안위만 위해서 한 말이 아니야.형식이를 위해서야.이정숙은 남에게 해만 끼치는 쓸모없는 여자야"
황무석은 그 말을 남기고,문을 잡고 선 최형식을 뒤돌아보지 않고 복도를 걸어갔다.
황무석은 복도를 걸어가면서 생각에 잠겼다.
내일 오전이면 최형식의 수중에 5억이라는 거액이 들어갈 것이다.
아마 최형식으로서는 오늘밤 동안 5억이라는 돈이 주는 중압감으로부터 벗어나기 힘들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돈이란,특히 처음 만져볼 수 있는 큰돈은 인간의 판단을 흐려놓고 생에 대한 필요 이상의 애착을 느끼게 하며 잘못된 자신감을 불어넣어준다는 사실을 황무석은 알고 있었다.
최형식도 예외가 아닐 것이라고 확신했다.
층계를 천천히 내려가면서 그는 미소지었다.
지금쯤 정신이 들어 고뇌에 싸여 있을 최형식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황무석이 탄 택시는 집으로 돌아오던 중 다시 세브란스 병원을 지나쳤다.
그는 문득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이정숙의 죽음을 간절히 원하는 사람으로서 자신과 최형식 외에 또 한 사람이 있고 어쩌면 그 사람이 누구보다 더 과감히 행동으로 옮길 수 있다는 느낌이었다.
그 다른 사람은 바로 이미지였다.
그러고보니 자신이 이정숙의 사람됨됨이에 대해 얘기한 것은 무의식중에 이미지의 그런 행동을 사주할 의사가 있었던 것 같았다.
여하튼 자신을 포함한 세 사람 중 한 사람이 그날밤 살인자가 될 운명을 지니고 있음을 그는 어렴풋이 예감하고 있었다.
황무석은 자신의 놀란 표정을 겉으로 나타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10억이 아니더라도 2억만 주세요. 2억 중 전번에 제가 아버지 만나러 중국 갈 때 주신 천만원은 빼고 1억9천만원만 주시면 돼요…"
그렇게 말하는 최형식의 시선이 자신의 얼굴에 집요하게 머물고 있음을 황무석은 느꼈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또한 잘 알고 있었다.
협박하는 자를 이기는 유일한 방법은 그것을 협박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협박하는 자를 적으로 만들지 않아야 한다고 황무석은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그렇지 않으면 협박은 끝이 없을 것이고 그를 영원한 적으로 만들게 된다.
"1억9천만 원은 너무 적은 돈이야.언젠가 때가 되면 너에게 주려고 한 돈이 있어.5억이야.그 돈으로 일단 아파트부터 옮기도록 해봐.IMF사태가 시작됐으니 아파트값이 엄청나게 내려갈 거야"
황무석이 미소지으며 말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전번 중국 갈 때 천만원 준 것은 여비에 쓰라는 거였어.아버지에게 주라는 돈이 아니야.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어….내일 오전 11시경 우리 집으로 와 정태엄마를 만나. 5억 보증수표를 봉투에 넣어 보관하고 있을 거야"
황무석이 소파에서 일어났다.
최형식은 무엇에 홀린 듯 정신 나간 표정을 짓고 있었다.
황무석이 서너 발자국 문 쪽으로 옮겼을 때에야 최형식은 정신이 돌아온 듯 얼른 일어나 황무석보다 앞서가 문을 열었다.
황무석이 그를 지나쳐 문을 나서기 전 최형식의 어깨를 다독거려주면서 입을 열었다.
"아까 내가 말한 거 잘 생각해봐.내 안위만 위해서 한 말이 아니야.형식이를 위해서야.이정숙은 남에게 해만 끼치는 쓸모없는 여자야"
황무석은 그 말을 남기고,문을 잡고 선 최형식을 뒤돌아보지 않고 복도를 걸어갔다.
황무석은 복도를 걸어가면서 생각에 잠겼다.
내일 오전이면 최형식의 수중에 5억이라는 거액이 들어갈 것이다.
아마 최형식으로서는 오늘밤 동안 5억이라는 돈이 주는 중압감으로부터 벗어나기 힘들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돈이란,특히 처음 만져볼 수 있는 큰돈은 인간의 판단을 흐려놓고 생에 대한 필요 이상의 애착을 느끼게 하며 잘못된 자신감을 불어넣어준다는 사실을 황무석은 알고 있었다.
최형식도 예외가 아닐 것이라고 확신했다.
층계를 천천히 내려가면서 그는 미소지었다.
지금쯤 정신이 들어 고뇌에 싸여 있을 최형식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황무석이 탄 택시는 집으로 돌아오던 중 다시 세브란스 병원을 지나쳤다.
그는 문득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이정숙의 죽음을 간절히 원하는 사람으로서 자신과 최형식 외에 또 한 사람이 있고 어쩌면 그 사람이 누구보다 더 과감히 행동으로 옮길 수 있다는 느낌이었다.
그 다른 사람은 바로 이미지였다.
그러고보니 자신이 이정숙의 사람됨됨이에 대해 얘기한 것은 무의식중에 이미지의 그런 행동을 사주할 의사가 있었던 것 같았다.
여하튼 자신을 포함한 세 사람 중 한 사람이 그날밤 살인자가 될 운명을 지니고 있음을 그는 어렴풋이 예감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