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의라니요?)무엇을 어떻게 협의할지, 이제부터 검토하지 않으면 안될 뿐인데…"

김대중 대통령과 모리 요시로 일본총리의 정상회담이 끝나고 난 후인 25일 아침 일본의 한 유력 일간지에서는 일본 정부관계자의 이같은 코멘트가 눈길을 끌었다.

관련기사의 내용은 이렇다.

"한국언론은 김 대통령의 귀국에 맞춰 정보통신부가 한·일 전자상거래 확대의 장애가 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양국이 20억원(약 2억엔)을 공동 출자해 제휴사업을 하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이는 회담의 구체적 성과를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일본측은 이제부터 검토해야 할 일이라며 신중한 자세를 견지했다"

이 대목 뿐만이 아니다.

이 신문은 정상회담결산 기사를 통해 경제적 측면에서의 성과를 강조하려는 한국정부와 조심스런 태도를 유지하려는 일본정부간에 틈이 벌어질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그리고는 김대중 정부가 경제위기에 대한 불안으로 해외투자유치 등 구체적 성과만을 염두에 두고 대외정책에 매달린다면 일본에서는 경계감만 높아질 것이라고 못박았다.

앞서 일부 일본언론이 서울발 기사에서 지적했듯이 일본은 이번 회담에서 빅 카드를 내놓은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다.

부품 소재산업에서 한국정부가 70억달러의 일본자금을 유치하겠다는 기대를 표시했지만 돈줄을 쥔 일본기업이 투자를 안하면 그만이다.

재일교포의 참정권 문제도 모리 총리는 "국회심의에 기대한다"는 말로 약속을 대신했다.

일본정부와 언론은 지난 6월의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긴장완화와 화해가 초스피드로 진행되는걸 지켜보며 놀라움과 초조감을 감추지 못했다.

한·일정상회담에 대한 일본언론의 보도자세로 볼때 최근 한국에서 꼬리를 물고 이어진 파업,증시추락,그리고 고유가 등의 악재로 인해 한국을 바라보는 일본의 시각이 다시 바뀌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개인도,금융기관도,나라도 모두 마찬가지다.

돈을 빌려 달라는 측이 병약하거나 노쇠해지면 부자의 지갑은 선뜻 열리지 않는다.

일본정부가 삐그덕거리는 한국경제와 초조한 한국정부를 보며 다시 야박한 부자의 속내를 드러낼 수도 있다.

도쿄=양승득 특파원 yangs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