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홍상화

별거중인 아내 이정숙이 의식회복의 기미를 보이기 시작한 날로부터 나흘이 지난 날 아침 7시30분쯤 진성호는 차를 직접 몰아 세브란스 병원으로 향했다.

아내가 부분적으로 의식을 회복한 후 최소한 사흘 동안은 담당 의료진과 친정 어머니 외에는 어느 누구와도 면회하는 것이 좋지 않으리라는 담당 의사 민 박사의 의견에 따라 오늘 아침에야 병원으로 가는 길이었다.

아내가 의식회복의 기미를 보였다고 했지만 어느 정도 회복되었는지는 자세히 설명을 듣지 못했고 또한 지난 사흘 동안 어떤 차도가 있었는지 진성호는 매우 궁금했다.

"기사는 왜 안 데리고 왔어?"

옆좌석에 앉아있는 누이 진미숙이 물었다.

어머니는 형인 진성구와 같이 오기로 되어 있고 진성호가 병원으로 가는 길에 진미숙에게 들러 동행하게 되었던 것이다.

"기사 집이 이 근처라 직접 병원으로 오라고 했어"

"이 교수가 점점 더 좋아지겠지?"

사고 전 대학에서 의상학을 강의한 이정숙을 이 교수로 호칭하며 진미숙이 물었다.

"모르겠어.다른 데는 다치지 않았고 다만 의식불명 상태였으니까"

"다친 데는 하나도 없는데 어떻게 의식불명이 되었지?"

"아내가 원래 심장이 좀 약했어.민 박사 말로는 자동차 사고 때 받은 충격으로 여러 번 호흡이 짧은 시간 동안 중단되었을 거라고 하던데"

"호흡이 중단되면 의식불명을 일으키나?"

"호흡이 중단되면 산소부족으로 뇌세포가 손상될 수 있대.의식에 관련된 뇌세포가 손상되면 의식불명이 된대나봐"

"그런 경우…손상된 뇌세포가 다시 정상적으로 회복될 수 있는가보지?"

"경우마다 다른가봐.환자의 건강상태와 뇌세포가 손상된 정도에 따라 영원히 의식을 회복할 수 없을 수도 있고,부분적으로 의식을 회복할 수도 있고,또 드문 경우기는 하지만 완전회복도 가능한가봐"

"이 교수는 강한 성격을 가진 여자니까 완전히 회복될 거야"진미숙이 말했다.

두 사람 사이에 침묵이 흘렀고 그들이 탄 차는 광화문 로터리를 지나 청와대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뮤지컬 공연은 잘 되고 있지?"

진성호가 진미숙을 쳐다보며 말했다.

"그런 대로 좋은 반응을 얻고 있어.특히 출연진 중…"

진미숙이 말을 이어가려다 머뭇거렸다.

"김명희 잘해?"

진성호가 물었다.

"아주 잘하고 있어.김명희는 이제 이 뮤지컬로 예술가의 반열에 올라설 거야"

"그래서 나더러 손떼라는 거야?"

진성호의 물음에 진미숙이 천천히,그러나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진성호가 덧붙였다.

"다시 김명희에게 손댈 생각도 없었어.나는 예술가의 뒤치다꺼리를 할 만큼 그렇게 한가한 사람이 아니야.내가 필요한 여자는 내 뒤치다꺼리를 해주는 데만 만족할 수 있는 여자야.그리고 내 이름이 싸구려 주간지의 가십란에 오르락내리락해도 괜찮을 정도로 회사 경영상태가 좋지도 않아"

진성호는 확고한 태도로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