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주 < 서강대 경제학 교수 / 국제대학원장 >

경제위기가 다시 오고 있는가.

포드사 대우차 인수포기,증시폭락 등 불안요인들이 시중에 위기설을 확산시키고있다.

정부는 서둘러 2차 금융구조 개혁방안을 제시해 내년 2월말까지 매듭짓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경제에 불리한 ''3고(高)''현상이 나타나고 있음을 우려하는 보도가 있어 흥미롭다.

97년 말 경제위기 때,긴급자금을 지원한 IMF라는 이름의 외세를 빌려 복잡다기한 이익집단들의 목소리를 잠시 잠재울 수 있었고,양해각서 때문에 거시경제운용및 구조조정의 일관성과 추진력을 확보할 수 있었기에 경제회생이 신속히 진행될 수 있었다.

국제경제환경도 유리하게 작용했다.

그러나 정부의 위기극복 졸속 선언으로 긴장감이 이완되고 근래에는 국제유가 폭등을 계기로 국제경제여건의 변화가 ''3고''우려를 자극하고 있다.

약간 견강부회의 느낌이 있지만 ''3고'',바꿔 말하자면 ''스리 고''현상을 음미해 보기로 하자.

국민오락 가운데 동양화 놀이가 으뜸인 나라에서 ''스리 고'' 모르면 간첩일 터이다.

이 놀이가 가계생활 근로관습 협상행태에 미치는 부정적 효과는 긍정적 요인을 상쇄한다.

특히 기업의 무리한 확장경영과 모험성,노사협상에서 나타나는 극단적 주장 등이 ''못 먹어도 고''를 선택하는 놀이 정신을 쏙 닮았다.

그러나 오늘 이 글의 주제는 또 다른 ''스리 고''에 있다.

얼마전 전직관료 한 분이 귀띔해 준 얘기다.

윗 사람 눈에 벗어나지 않도록 무난하게 일처리 해 자리를 지켜 승진 기회를 노리는 관료들의 타성에 경종을 울리는 현자의 말이었다.

사건이 터지면 우선 이를 ''덮고''보려는 것이 관료의 생리다.

없었던 일,법적 하자가 없는 일,모르는 일,사소한 일 등으로 사건을 부인ㆍ은폐ㆍ축소하려는 것이 첫번째 반응이다.

관료는 언론과 친화관계를 유지하는 일이 중요하다.

그래야 불리한 보도가 원천봉쇄되고 신문가판에 실려도 교섭해 뺄 수 있다.

일단 대중매체에 실린 다음 거센 여론을 잠재우려면 우선 그 초점을 흐리게 해야한다.

다른 유리한 뉴스거리를 제공해 이미 보도된 사건의 중요성을 희석시키는 일이 중요하다.

한층 고차원적 전술은 극약처방이다.

원래의 사건을 덮으려 또 다른 스캔들을 흘려 관심을 분산시키는 수도 있다.

일반국민의 짧은 기억력,언론의 지속적 심층보도 부족이 도움이 된다.

이렇게 보도자료를 적절히 ''섞고'',관심을 돌리는 일에 능해야 한다.

그래도 비판이 지속되는 경우,정책 대안제시를 뒤로 연기하는 자세로 일관한다.

더 두고 보면 기왕의 조치가 곧 효과를 발휘할 것이므로 추가적 조치가 불필요하다고 고집한다.

특히 개각이나 임기만료가 임박한 시점에서 개혁의지는 기대 밖이다.

궂은 일 뒤처리 작업에 따른 비판,자칫하면 국회청문회 출두를 모험할 까닭이 없다.

''덮고 섞고 미루고''로 요약 표현한 무사안일의 타성은 작금의 의혹사건을 다루는 검찰 측 태도를 보고 공감하는 국민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스리 고''현상이 어찌 관료계에 국한된 현상이겠는가.

가장 극심한 곳이 정치계일 것이다.

정부 여당은 ''스리 고'' 모두에 해당하는 우를 범하고있다.

예컨대 경제문제는 남북관계개선으로 희석될수 없다.

야당도 민생문제를 뒤로 ''미루고'' 정쟁을 앞세워 국회를 공전시킨 책임을 분담하고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97년 경제위기는 단순히 가용외환보유고 부족이 빚은 환란만이 아니라 복합적 구조를 가졌고 위기의 밑바닥에 ''스리 고''현상이 깔려 있다.

그러나 이 현상은 관료계 정치계만의 문제가 아니다.

기업 노조 가계소비자도 모두 경제위기 극복의 어려움을 분담하길 꺼리고 있다.

어려운 구조조정의 부담을 다른 쪽에서 맡아주길 바라며,우리가 할 일을 뒤로 미루다 보면 다른 쪽의 희생을 제물로 삼아 문제가 해결되길 바라고 있지 않은가.

주요 경제현안을 투명하게 ''밝히고'',정책의 일관성있는 추진을 위해 국정의 관심을 ''집중하고'',지금이 구조조정의 마지막 기회라는 각오로 일을 다부지게 ''챙기고'' 나서는 자세가 필요하다.

낡은 ''스리 고''를 새롭게 바꿔야 나라 경제가 산다.

총체적 위기극복에 국민 모두가 나서야 나라가 산다.

pjkim@ccs.soga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