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1백1조원 규모의 내년도 예산안을 확정했다.

국회심의 과정에서 다소의 조정이 예상되지만 4년연속 적자재정을 통해 재정규모가 사상 최초로 1백조원을 넘게 됐다는 점에서 환란 이후 훼손된 재정건전성에 대해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에서는 내년도 적자규모가 GDP의 1% 수준이어서 2003년 균형재정 달성에는 문제가 없다고 장담하고 있으나 이는 지나친 낙관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최근 우리 경제는 고유가,반도체 가격하락,구조조정 지연에 따른 대외신인도 하락 등의 악재가 겹쳐 제2의 경제위기설이 대두될 정도로 급격히 악화되고 있다.

그런데도 정부가 6개월전 예산편성지침에서 제시한 경상성장률 8∼9%를 고수하고 있는 것은 최근의 사태를 지나치게 안이하게 보고 있다는 증거라 하지 아니할 수 없다.

설령 내년도 경상성장률이 8∼9%에 이른다고 해도 예산증가율이 금년 본예산 대비 9%에 이르고 있어 긴축 예산이라고 보기 힘들다.

이는 건전 재정의 조기회복을 위해 예산증가율을 경상성장률보다 2%포인트 낮게 운영하겠다던 당초의 약속과도 다르다.

예산규모 증가 못지 않게 재정건전성에 대한 우려를 증폭시키는 것은 국채이자 부담만 9조5천억원이나 되는 상황에서 복지 의료 교육 등 ''경직성 지원지출''을 대폭 늘려 재정구조의 경직성이 현저히 높아지게 됐다는 점이다.

물론 열악한 교육여건 개선을 위해 지방교육 재정지원을 확대하고 소득분배 구조악화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저소득층 지원을 늘리는 것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이들 지출의 대부분은 늘리기는 쉬워도 줄이기는 어려운 경직성 예산이라는데 문제가 있다.

교육재정 교부율을 내국세의 13%로 인상한 것은 지방교육 재정을 위해서는 다행스러운 일이나 국가재정 기반약화는 불가피하다.

기초생활 보호대상자를 1백60만명으로 늘리고 월평균 지원액을 16만6천원으로 인상한 것도 그 불가피성 여부를 떠나 두고두고 재정운영을 압박할 것이 분명하다.

또 의료보험 체제를 수술하는 등의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함이 없이 무려 1조9천억원을 의약분업에 지원하는 것은 ''밑빠진 독에 물붓기''식의 지원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에 비해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한 사회간접자본 예산은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어 불균형을 보이고 있다.

따라서 국회는 예산심의 과정에서 재정의 건전성 회복를 위해 예산규모를 적정수준으로 조정하고 복지시스템을 정비하는 등 재정의 효율성 제고와 관련한 제도개선에 적극 나서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