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와 기업이 피부로 느끼는 체감경기가 급속히 위축되고 있다.

현장에선 경기가 나쁘다고 아우성이다.

불황 국면에 빠질지 모른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각종 경제지표가 여전히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는 정부 발표와는 딴 판이다.

경기상황과 대책을 시리즈로 진단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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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요. IMF가 따로 없습니다"

베테랑 택시기사인 박상문(39)씨의 푸념이다.

그는 지난 봄만해도 사납금 7만1천원 외에 하루 5만원을 집으로 가져 갔다.

요즘엔 하루 2백50㎞를 달려도 사납금을 빼면 3만원 벌기가 어렵다.

손님을 못 태우고 빈차로 다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의 총 주행 대비 실주행(손님이 탑승한 주행거리) 비율은 60%대로 IMF 이전 수준(73%)에 크게 못미친다.

경기가 상승세를 지속하고 있다는게 정부 발표지만 서민들은 요즘 IMF 직후의 한파를 다시 느끼고 있다.

경동시장 서부상회에서 청과도매상을 하는 박인선(57)씨는 "어제는 문을 열고 나서 4시간 만에 가까스로 배 한 상자를 팔았다"며 "추석 이후엔 점포 유지도 힘든 상황"이라고 말했다.

남대문 의류상가에서 숙녀의류점을 운영하는 김영자(43)씨는 "6월부터 손님 수가 부쩍 줄어 최근엔 거의 개점휴업 상태"라며 고개를 흔들었다.

TV 내수판매량은 지난 1월 18만대에서 6,7월엔 13만대까지 하락했다.

결혼 성수기에다 올림픽 특수까지 낀 8,9월에도 월평균 14만대에 머물고 있다.

경매시장엔 다시 매물이 쌓이고 있다.

경매전문 정보업체인 그린넷에 따르면 서울.경기.인천.강원지역 경매물건은 지난 8월 5천7백건에서 9월엔 1만2천5백90건으로 급증했다.

서울의 경우 지난 6월 단 1건에 불과하던 공장 매물이 9월엔 11건이나 나왔다.

주택매물은 같은 기간중 6백36개에서 1천9백37개로, 아파트는 4백35개에서 1천1백34개로 늘어났다.

이 회사의 이홍복 사장은 "지방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를 중심으로 부도 매물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며 "최근엔 서민들의 개인파산도 늘어나는 추세"라고 들려줬다.

물가는 치솟아 소비자들의 체감경기를 더욱 썰렁하게 만들고 있다.

서울 양재동에 사는 주부 김인숙(36)씨는 장보기가 겁난다.

한달전 8백원하던 무 한 개 값이 최근엔 1천6백원으로 올랐다.

배추 한 포기 가격은 한달새 1천1백원에서 1천8백원으로 뛰어 김치조차 마음 놓고 먹을 수 없는 형편이 됐다.

9월 물가가 전월대비 1% 가량 올랐다지만 장바구니 물가는 지표물가 상승률을 훨씬 뛰어 넘고 있다.

경북 구미공단에서 화섬업체를 운영하는 K사장은 "원자재값이 뛰어 오른데다 수출단가는 떨어져 5개 라인중 2개를 놀리고 있다"며 "일부 공단에선 IMF가 다시 온다는 흉흉한 얘기가 나돌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에선 양극화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추석연휴전 주요 백화점에서 파는 수십만원대의 양주와 갈비세트가 조기품절 사태를 빚었다.

롯데백화점 관계자는 "추석특판 때 목장한우 특호(60만원)나 고급 꼬냑 루이 13세(3백만원) 등 초고가 상품이 지난해보다 3배가량 더 팔려 나갔다"고 전했다.

향후 경기동향을 예고하는 경기선행지수는 지난해 9월 이후 11개월째 둔화되는 추세다.

설비투자의 대표적인 선행지표인 8월중 공작기계 수주율도 전달보다 7.4% 감소했다.

정부는 그러나 현재 경기가 소폭 등락하는 조정기를 거치면서 잠재성장률 수준으로 자리를 잡아가는 과정으로 분석하고 있다.

재경부 관계자는 "경기동향을 가늠할수 있는 롯데 현대 등 5대백화점 판매액 증가율이 지난 2.4분기 21.5%에서 8월에는 8.0%로 줄고 시멘트 출하량은 같은 기간중 7.6%에서 3.7%로 떨어졌지만 아직 마이너스로 돌아서진 않았다"고 설명했다.

국내외 전문가들의 시각은 다르다.

미국의 월스트리트 저널은 최근 전문가들의 말을 인용, "내년에 미국의 경기둔화가 예상된다"며 "대미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3.9%에 머물 것"이라고 경착륙 가능성을 경고했다.

유병연 기자 yoob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