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말에 그 테이블에 있던 기자들은 미디움 레어와 미디움 웰(well)을 적당하게 섞어 시켰다.
음식이 나왔을 때 보니 필자가 시킨 미디움 웰 조차 서울에서는 레어의 수준이었다.
"익었다"는 말의 기준이 참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익었다"는 말은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도 마찬가지로 혼란스러울 때가 있다.
정통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는 스파게티(spagetti)를 입에 넣고 씹었을 때 살짝 심이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약간 덜 삶아진 상태인 "알 덴테"(al dente=to the teeth) 상태가 가장 맛있다고 한다.
하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알 덴테 상태로 스파게티를 내놓았을 경우 십중팔구 "왜 덜 익은 스파게티를 주느냐"는 불만을 듣기가 십상이었다.
음식을 푹 익혀서 완전조리를 하는 우리 식문화에서는 능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물론 요즘은 알 덴테 정도가 아니라 웬만한 파스타(pasta)와 소스의 이름을 줄줄 꿰는 이탈리안 푸드 마니아들이 많아져 그런 일이 거의 없다고 한다.
스파게티가 파스타의 일종이라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
다른 밀에 비해 글루텐이 많은 듀럼 밀(durum wheat)로 만든 세몰리나(semolina)라는 밀가루를 따뜻한 물과 섞어서 반죽해 원하는 모양의 틀에 넣어 뽑아낸 것들을 모두 파스타라고 부른다.
파스타는 크게 프레시(fresh)파스타와 드라이드(dried)파스타로 나눌 수 있다.
프레시 파스타는 달걀로 반죽해 2~3시간안에 주로 집에서 해먹는 방식이다.
국내의 특1급호텔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나오는 파스타는 프레시 파스타로 보면 된다.
드라이드 파스타는 치즈나 고기로 속을 채워 만두처럼 생긴 스터프드(stuffed) 파스타를 비롯해 롱 파스타,숏 파스타로 구분된다.
네모난 파스타 반죽 안에 시금치와 치즈 고기를 넣은 라비올리(ravioli),동그랗게 만든 토텔리니(tortellini) 등이 스터프드 파스타에 속한다.
롱 파스타에는 "엔젤 헤어(angel hair)"라고 하는 직경 1mm의 카페리니부터 페데리니,버미셀리,스파게티니 순으로 점점 굵어져 직경 1.8mm의 스파게티까지 우리네 국수 모양의 파스타가 있다.
또한 스파게티를 납작하게 누른 듯한 타원형의 링귀니(linguine),페튜치니(fettucine),훨씬 굵직한 탈리아텔레(tagliatelle),넓적한 판 같은 라자냐(lasanya) 등이 있다.
숏 파스타에는 꼬부라진 관 모양의 마카로니(macaroni),둥근 관을 45도 각도로 자른 길쭉한 모양의 펜네(penne),나비 모양의 파르팔레(farfalle),나선형의 푸실리(fusili),조개 모양의 콘칠리에(conchiglie)등이 있다.
파스타에 맛을 더해 주는 재료로는 단연 토마토와 올리브 오일.
파스타의 담백함에 토마토의 새콤 달콤함 그리고 올리브 오일의 촉촉함이 어우러져 훌륭한 한 접시의 파스타가 만들어진다.
여기에 바질 오레가노 등의 신선한 허브가 곁들여지면 금상첨화.
대표적인 소스로는 다진 고기와 토마토 퓨레로 만든 미트소스인 볼로네즈(bolognase)소스,조개를 넣고 만든 봉골레(vongole)소스,버터와 크림 파르메산 치즈로 만든 알프레도(alfredo)소스,크림과 베이컨 등으로 만든 카르보나라(carbonara)소스 등이다.
무엇보다도 파스타의 큰 매력은 그 자체의 담백함으로 인해 이 세상에 존재하는 수백 수천 가지 재료와의 조화로운 조합으로 다양한 맛을 만들어낼 수 있는 소재라는 점.
게다가 비트,달걀 노른자,시금치,당근 즙,오징어 먹물로 빨강 노랑 초록 주황 검정색까지 입으면 그 활용도는 형언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른다.
이화여대 후문에 있는 레스토랑 "내사랑 알프스"사장은 "스파게티를 제대로 하는 레스토랑에서는 스푼을 같이 준다.
오른손에 쥔 포크에 스파게티를 말아 올릴 때 왼손에 쥔 스푼으로 받쳐주어야 손님이 품위 있게 먹을 수 있다"고 스파게티를 보기 좋게 먹는 법을 소개한다.
신혜연 (월간 데코 휘가로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