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위미술의 선구자 김구림(64)씨.

그는 정규대학에서 체계적으로 미술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어느 예술가 못지 않은 실험정신으로 늘 새로운 작품세계를 개척해온 작가다.

온갖 기행과 거침없고 파격적인 작업으로 국내화단에서 "이단아" 취급을 받아왔지만 파란만장한 자신의 삶 만큼이나 여러장르를 넘나드는 작업을 펼쳐온 정열적 화가이기도 하다.

그의 40년 예술인생을 정리하는 회고전이 오는 10월10일까지 서울 종로구 동숭동 문예진흥원 미술회관(02-760-4601)에서 열리고 있다.

''현존과 흔적''전이란 타이틀로 열리는 이번 전시에는 미발표작을 포 함,그의 대표작 50여점이 출품됐다.

평면회화는 물론 설치 비디오아트 사진 등 김씨의 실험적이고 다양한 예술세계를 감상할 수 있는 자리다.

일부 작품 보관이 어려웠던 설치작품들은 다시 제작해 전시되고 있다.

김씨는 50년대말 앵포르멜(비정형) 미술과 60년대초 서정적 추상에 잠시 관심을 쏟다가 60년대 중반부터 플라스틱 기계부속품 비닐 등을 사용한 매체실험과 오브제작업에 손을 대기 시작한다.

60년대말에는 문화예술 종교분야 인사를 망라한 실험단체 ''제4그룹''을 결성했고 70년에는 한국 최초의 대지예술이라 할 수 있는 ''현상에서 흔적으로''라는 기상천외한 작품을 발표하기에 이른다.

이 작품은 한강변 살곶이 다리 인근 뚝방을 일정한 기하학적 도형으로 불태워 그 흔적을 남긴 작품으로 일부러 불을 지른 것으로 오인한 경찰관들이 출동하기도 했다.

60년대말 3차례에 걸쳐 1백명에게 메일을 보낸 후 수신자들의 반응을 작품화한 집단 퍼포먼스 ''매스미디어의 유물'' 역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의 실험작업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69년에는 실험적 영화 ''1/24초의 의미''를 제작하는가하면 연극 무용 등 모든 예술장르에 닥치는 대로 손을 뻗쳤다.

70년대 아방가르드협회 등 실험적 그룹활동에 참여하면서 논리성과 개념성을 강조한 설치미술과 평면회화 판화 비디오 등 여러 장르에 걸쳐 전위예술 작업을 시도했다.

74년 스위스 로잔에서 개최된 국제 임팩트 비디오 비엔날레에서는 실험적 작품을 출품해 눈길을 끌었다.

이때 일본에서 현대판화기법을 배워와 국내에 보급했고 개인 판화공방도 차렸다.

80년대 중반부터는 일부 기간을 빼고 줄곧 미국에서 살며 왕성한 창작활동을 벌여왔다.

전시기획을 맡은 김찬동 문예진흥원 미술회관팀장은 "김구림은 인습적 사고에 대한 부정과 자신의 작업에 대한 부단한 해체를 통해 독특한 작품세계를 구축한 한국화단의 독보적 존재"라고 평가했다.

이번 전시와 별도로 가나아트갤러리 주관으로 10월2일부터 11일까지 서울 평창동 서울경매 포룸스페이스에 김씨의 최근작 20여점이 걸린다.

윤기설 기자 upyk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