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기(氣)싸움 할 생각이 없습니다. 싸움의 능수도 아닙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국민의 요구를 외면하고 있으며 기싸움을 한다면 제가 아니라 국민과 하고 있는게 아닙니까"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는 2일 기자회견을 열어 영수회담을 거듭 촉구하며 이처럼 말했다.

이 총재가 상대방의 기를 꺾는데 열중하고 있지 않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었다.

나아가 이 총재는 정국불안의 모든 책임을 김 대통령에게 돌렸다.

"국민과 야당이 목이 터져라 외쳤지만 김 대통령이 철저히 외면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총재는 미리 배포한 기자회견문에서 김 대통령에 대해 ''모든 것을 혼자 결정하는 것으로 유명한''이라고 묘사했다가 회견문을 낭독하면서는 이를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나 여당측이 제안한 중진회담을 거부하고 영수회담을 고집하는 이 총재는 "대통령이 특검제는 안된다고 기준을 정한 이상 여당 중진이 이를 넘어설 수 있느냐"며 대통령과 담판을 지어야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극한투쟁을 벌이다 툭하면 대통령과 담판을 짓겠다는 태도는 영수회담이 ''만병통치약''이라는 인식과 무관하지 않은 듯하다.

국민들의 고통은 아랑곳않고 총파업을 벌이던 금융노련이 재경부장관및 금융감독위원장과의 대화를 거부하고 대통령의 결단을 요구하거나 의료계가 보건복지부 장관을 제친채 대통령이 나서라고 촉구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일찍이 이승만 전 대통령의 정치고문을 지낸 그레고리 핸더슨은 ''소용돌이의 정치학(Politics of Vortex)''이란 저서에서 한국정치의 문제점을 신랄하게 지적했다.

정점에 최고 권력자가 있고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소용돌이치며 그 정점을 향하고만 있다는 것이다.

그 와중에 국민들은 고통받고 철저히 외면당한다고 했다.

이 총재는 이번에도 영수회담을 거듭 요구했다.

그러나 지금 국민들이 원하는건 영수회담이나 어떤 사안에 대한 대통령의 결단이 아니다.

당장 화급한 경제현안을 다루고 민생을 풀기 위한 국회에서의 토론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

정태웅 정치부 기자 redae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