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적자금의 추가조성은 없다"던 정부는 지난 9월22일 "국민과 국회가 이번 한번만 동의해 준다면 혼신의 노력을 다해 올해 안에 금융구조조정을 완료하겠다"고 다짐하면서 40조원의 추가공적자금 조성을 발표했다.

이미 조성된 64조원을 합치면 공적자금 조성총액은 1백4조원으로 2000년 정부예산 1백1조원보다 큰 규모다.

대우그룹 부실 정리에만 30조원이 추가로 필요하다니 40조원은 수긍이 가고,취약해져 가는 금융중개기능을 되살리기 위해 추가자금 투입의 불가피성도 인정된다.

그러나 이번이 마지막인지,40조원이면 충분한지,올해 안에 구조조정이 완료될 것인지,내년부터는 금융시장이 정상화될 것인지에 대해선 의문이 생긴다.

한보철강 부도에서 시작된 대기업의 연쇄부도로 붕괴돼가는 금융시장을 살리기 위해 97년4월 ''부도유예협약''과 함께 처음 마련된 공적자금인''부실채권정리기금''은 1조5천억원으로 출발했다.

이것이 3조5천억원으로,다시 64조원으로 커지고 1백4조원까지 늘어나게 됐다.

공적자금은 금융기관 부실채권의 종속변수이고,금융기관의 부실채권은 기업 상환능력의 종속변수다.

기업의 상환능력은 자금수지와 가격 및 기술경쟁력에 의해 결정된다.

가격경쟁력과 기술경쟁력은 중국과 일본이라는 외생변수가 결정적 요인이다.

이러한 변수들의 시계열이 확정되고 크기와 상관관계가 파악되지 않고는 최종적인 종속변수인 공적자금의 적정 규모를 알 수가 없다.

지난해 개정된 신자산건전성 분류기준의 핵심인 미래의 채무상환능력은 개별 금융기관에 맡겨져 있다.

개별 금융기관은 기업의 자금수지는 쉽게 파악하겠지만,여러 변수들의 크기와 상관관계, 특히 상환능력의 핵심인 가격과 기술경쟁력은 간단하게 계산되지 않는다.

이번에 금융감독위원회가 이자보상배율을 중심으로 한 60대 계열기업의 퇴출기준을 정한 건 적절한 조치지만,최종적으로 국민 부담으로 귀착될 공적자금이 투입되는 경우는 미래의 상환능력에 대한 분석적이고 통일된 기준이 필요하다.

기업의 건전성과 구조조정은 금융기관의 건전성과 구조조정의 전제조건이다.

기업 구조조정이 선행되지 않고는 공적자금의 소요액을 추정할 수 없다.

지난 2년여 동안 치밀한 계획에 의한 기업 구조조정이 선행됐어야 한다.

40여 기업에 대한 워크아웃을 포함,기업 구조조정이 완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40조원의 추가 공적자금이 충분한지 모자라는지는 누구도 모른다.

더구나 금융구조조정이 시작된 후에도 대우그룹이 부도났을 때 10조원의 채권펀드를 만들고 현대건설의 부도는 막아주는 것과 같이 정부의 자의적 개입이 있는 한 책임한계가 모호해지고 기업의 부실은 잠복되기만 한다.

시중자금은 예금부분보장제를 앞두고 벌써 우체국과 소매금융을 주로 하는 국민·주택은행 등으로 몰린다.

공적자금을 가장 많이 받은 제일은행도 소매금융 중심으로 돌아섰고,기업금융을 주로 하는 한빛·조흥·외환은행은 자금이 빠져나가 기업금융의 여력이 자꾸만 축소되고 금융시장의 기업자금 중개기능이 취약해져 기업부도는 늘어날 것이다.

대우자동차와 한보철강의 매각은 무산되고,현대건설문제는 묻어두고 있다.

투자신탁 등 채권인수기반은 무너져 가고 있는데 금년 말까지 만기가 도래하는 20조원과 내년에 돌아오는 64조원의 회사채는 어떻게 처리할는지 대책은 보이지 않고 이에 따른 부실은 얼마나 발생될는지 아무도 모른다.

이러한 상황으로 볼 때 이번의 추가 공적자금이 마지막이고,또 40조원이면 충분할지 알 수도 없다.

올해 안에 금융구조조정이 완료되고 내년부터는 금융시장이 정상화되리라는 전망에는 숨은 복병이 너무 많다.

일정 시점에서 분석적이고 통일된 기준과 시한에 따라 기업 구조조정부터 먼저 완결한 다음에라야 실효성있는 금융구조조정이 가능하고 공적자금의 규모가 확정될 수 있다.

그리고 공적자금의 투입을 받은 금융기관은 이에 상응하는 기업금융을 하도록 하고 앞으로는 어떤 경우에도 상업금융기관의 대출에 정부가 관여하지 말고 결과에 대해선 엄격한 책임을 묻는 시스템이 구축돼야 추가 부실을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