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경제 위기論'' 원인과 처방 ]

프랑스의 세계적인 정치사회학자 기 소르망 파리정치대학원 교수는 경직된 기업문화가 한국의 대외경쟁력을 저해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상의하달식의 기업문화 때문에 기업의 창의력과 혁신능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그는 또 한국기업과 정부가 대외마케팅에서 공동보조를 취하지 못해 국제경쟁력을 제대로 키우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국제경쟁력을 키우려면 기업과 정부가 과거의 문화예술 유산보다는 현재의 문화예술을 앞세운 대외마케팅 전략을 펼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또다시 위기상황을 맞고 있는 한국경제와 기업에 대한 그의 견해를 들어봤다.

[ 만난 사람 = 강혜구 파리특파원 hyeku@coom.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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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름 한국을 방문했을 때 한국기업인들을 많이 만난 것으로 알고 있다.

한국기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기 소르망 =한국기업인과의 만남을 통해 외환위기 극복노력과 위기후 기업 구조조정 등 현장의 어려움과 고충을 많이 들었다.

한국기업은 위기를 통해 많은 교훈도 얻은 것 같다.

이는 한국기업의 선진화에도 기여할 것으로 확신한다.

하지만 아직도 한국기업은 국제경쟁력 강화를 위해 개선할 점을 갖고 있다.

무엇보다 기업문화면에서 한국기업은 개인의 독창성을 인정하지 않는 상의하달식의 계급조직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이는 기업의 창의력과 혁신, 나아가 사내 인간관계에 큰 장애로 작용한다.

지난 60~70년대에는 고속성장을 이루기 위해 이같은 기업문화가 큰 몫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젠 세상이 변했다.

새 시대에 맞는 기업문화 패러다임이 필요하다.

국제경쟁에서 이기려면 개인 하나하나의 창의력을 북돋워줘야 한다.

한국기업을 방문해 보면 큰 회의실 상석의 가장 높은 사람을 중심으로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잡는다.

그러나 정작 회의중 말을 하는 사람은 가장 높은 사람뿐이다.

많은 사람들이 참석하지만 상사의 눈치만 볼 뿐 자신의 의견을 내놓지 않는다.

전체 구성원들이 자유롭게 의견을 내놓을 수 있는 기업풍토가 아쉽다.

자유롭게 얘기하다 보면 혁신적인 아이디어도 나온다.

한국기업들은 경직된 사내 문화로 인해 인력자원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는 것 같다.

무거운 사내 분위기는 기업은 물론 사회발전에도 장애가 된다.

-한국기업에 대해 지적하고 싶은 점이 있다면.

▲기 소르망 =한국기업은 세계시장의 요구와 국제마케팅의 중요성을 잘 모르는 것 같다.

국제경쟁력을 높이려면 지구촌 소비자의 상품 선택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마케팅이 매우 중요하다.

특히 고부가가치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절대 필요하다.

물론 고품질이 우선돼야 함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또 브랜드마케팅이 동시에 이뤄져야 하는 데도 한국정부와 기업은 이상하리 만큼 이 점에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다.

70년대만 해도 유럽소비자들 사이에서 일본제품은 값이 저렴해 구입할 만하다는 인식이 강했다.

제품의 질은 다소 저급하지만 가격이 싸니 구입하자는 것이었다.

그 후 꾸준한 기술개발로 일본제품의 질이 향상됐지만 소비자들의 인식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그래서 일본은 자국 제품이 이젠 더 이상 저급품이 아니란 것을 알리기 위해 국제 브랜드마케팅에 적극 나섰다.

그리고 성공했다.

이젠 일본제품을 저급품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한국도 브랜드마케팅을 통해 ''한국산이니 돈을 더 줘도 괜찮다''는 인식을 세계소비자들에게 심어줘야 한다.

-구체적인 브랜드마케팅 전략이 있다면.

▲기 소르망 =브랜드이미지 제고를 위해선 기업 하나하나의 생산품에 대한 홍보도 필요하지만 정부차원의 국가이미지 홍보가 따라줘야 한다.

선진국의 정.경제계 인사들은 한국의 경제적 위상을 잘 알지 모르지만 일반소비자들은 그렇지 않다.

따라서 이들에게 한국은 더이상 싸구려 제품이나 파는 개도국이 아니란 점을 알려야 한다.

특히 선진국 국민을 상대로 한 홍보에서는 경제적 위상과 함께 높은 문화적 수준도 알려야 한다.

97년 외환위기 발생 전만 해도 한국 대기업들은 이 점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메세나(예술문화활동에 대한 기업의 지원)를 통한 기업홍보에 많은 관심을 쏟았다.

하지만 불행히도 환란이 발생하는 바람에 문화활동을 통한 기업의 브랜드마케팅이 위축됐다.

한 기업이 국제사회에 문화와 예술을 통해 자사 브랜드를 홍보하면 회사제품뿐만 아니라 국가이미지 향상에도 도움이 된다.

따라서 정부의 조직적 기획력과 지원이 필요한 데도 한국관리들은 이 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물론 한국공무원들도 문화 홍보의 중요성을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을 만날 때마다 답답하기 그지없다.

그들은 문화재와 민속상품만을 생각한다.

그러나 문화를 전통민속이나 예술과 혼동해서는 안된다.

21세기의 세계시장에서 부가가치가 높은 상품을 팔기 위해서는 현재 한국인의 문화예술 수준이 국제적이란 것을 보여줘야 한다.

고대문명 발상지 국가들이 과거의 문화유산을 내세워 오늘날 세계시장에서 고부가가치 상품을 파는 일은 드물다.

과거의 문화유산과 현재 한국인의 예술수준은 다르다.

지금 한국에서 생산된 제품을 팔기 위해선 현재의 한국예술 수준이 국제적이란 것을 보여줘야 한다.

-한국이 국가이미지 제고를 위해 특별히 활용할 수 있는 분야는.

▲기 소르망 =모든 예술분야다.

한국은 백남준을 비롯 조수미 정명훈 등 세계적 예술가를 탄생시킨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국가이미지 홍보에 너무 민속적인 것만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 아쉽다.

이미 세계무대에서 이름을 떨치고 있는 예술가들도 있지만 재능있는 신진작가를 통한 홍보도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선 정부와 기업간의 긴밀한 협력이 필요하다.

프랑스정부는 문화와 통상이 접합된 일관된 정책을 추진한다.

즉 정부가 앞장서 자국기업의 제품에 문화 라벨을 붙일 수 있도록 대외마케팅을 적극적으로 벌인다.

프랑스에도 문화재가 있고 민속문화가 있다.

하지만 대외 국가이미지 제고와 산업홍보를 위해 민속 무용단만을 내세우지는 않는다.

현대무용과 연극 영화 미술 디자인 등 현재 프랑스인의 예술을 강조한다.

-올해초 당신이 부시장으로 있는 블로뉴시의 시립미술관이 한국작가인 전수천씨 초대전을 기획했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기 소르망 =몇 해 전 한국방문때 발견한 그의 예술세계를 개인적으로 아주 좋아한다.

세계예술무대에서도 충분히 자랑할 만한 작가란 확신이 들었다.

그래서 그의 작품을 우리 시민들에게 소개하고 싶었다.

전시회에 온 블로뉴 시민들은 두 번 놀랐다.

우선 그의 예술성에 놀랐다.

그러나 한국이란 나라가 이 정도의 작가를 탄생시킬 수 있다는 점에 그들은 더욱 놀랐다.

관람객중에는 그간 한국에 대해 잘 몰랐던 사람들도 있었다.

이 전시회는 한국이 6.25 전쟁의 잿더미에서 아주 빠르게 경제성장을 이룬 국가일뿐 아니라 예술적으로도 국제수준에 도달한 문화선진국이란 점을 프랑스인들에게 알리는 계기가 됐다.

-남북정상회담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북한의 경제개발 및 한반도 통일에 기여할 것으로 보는가.

북한을 방문한 적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기 소르망 =남북정상회담 이후 양국간 대화무드가 조성되고 있지만 이것이 낙후된 북한경제를 단기간내 고속성장 궤도에 진입시키고 한반도통일을 가져다 주리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한반도통일에는 북한의 정치.경제적 연착륙이 전제돼야 한다.

많은 전문가들의 지적처럼 현재 남북의 경제력은 통독 직전 동.서독의 수준에 비해 크게 뒤떨어진다.

통독의 교훈에서도 알 수 있듯이 향후 한반도통일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는 북한의 경제개발이 우선돼야 한다.

평양 당국이 화해무드만 조성한다고 해서 북한에 외국인투자가 몰리지는 않는다.

북한에는 산업관련 인프라가 거의 전무하기 때문이다.

북한 정치체제도 외국인투자를 주춤하게 하는 원인이다.

많은 투자자들이 변덕이 심하고 아직도 정부의 의지가 불투명한 북한에 투자하기를 머뭇거리고 있다.

북한당국이 정녕 경제개발을 원한다면 비록 정치적으론 중국을 따라가더라도 경제적으론 개방을 추구해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북한정부가 경제를 개방했을 경우에 들이닥칠 자유화 물결로 인해 초래될 정치적 결과를 두려워 한다는 것이다.

-국제기아퇴치연맹의 설립자로서 이 문제에 상당한 관심을 두고 있는데 북한 식량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기 소르망 =내가 회장으로 있는 이 연맹은 작년말까지만 해도 북한에서 기아퇴치운동을 벌였다.

하지만 북한당국의 삼엄한 감시와 통제로 활동에 회의를 느꼈다.

북한의 기근을 근본적으로 퇴치할 수 있는 것은 국제사회의 인도적 도움이나 한국측의 식량지원이 아니다.

기아퇴치를 위해 북한당국이 해야 할 것은 농산물의 생산력을 늘리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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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 소르망 누구인가 ]

프랑스를 대표하는 석학으로 꼽히는 기 소르망(56)의 직함은 매우 다양하다.

교수 문화비평가 미래학자 작가 언론인 사업가 부시장 등 그의 활동분야를 한 단어로 표현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본인의 사회적 명칭을 하나로 축약해 달라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지성인이고 싶다"라고 대답했다.

국립 동양어전문학교(INALCO)와 명문 국립행정대학원(ENA)를 졸업한 그는 현재 파리정치대학원에서 정치철학을 강의하고 있다.

오랫동안 미국 "월스트리트 저널"과 프랑스 시사주간지 "렉스프레스", "레벤느망 뒤 제디"에 정기적으로 기고했으며 지금은 르 피가로지 칼럼니스트로 활동중이다.

지난 83년에 "미국 보수주의의 혁명" 발표이후 매년 한권씩 책을 내고 있다.

84년에 출간된 "자유로운 해결방법"은 당시 프랑스에서는 보기 드문 개방진보 성향의 책으로 프랑스 학술원상을 받았다.

몇해전부터는 국제 기아퇴치운동 회장직을 맡고 있으며 파리 근교 블로뉴시의 부시장이기도 하다.

그는 영어뿐 아니라 중국어와 일본어 러시아어에도 능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