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차와 한보철강 해외매각 불투명, 불안한 국제유가, 경기둔화 등 증시안팎의 악재가 겹치면서 외국인투자자들도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특히 미국 포드차가 대우차 인수를 포기한 지난달 15일이후 매수우위, 매도우위의 혼란스런 매매패턴을 거듭하고 있다.

외국인은 한국상황을 어떻게 보고 있는 것일까.

지난 92년 국내 증시가 개방되기전부터 관심을 가지기 시작해 지금까지 한국주식에만 전문적으로 투자하는 미국의 해리 세거먼 IIA(International Investment Advisers) 회장을 만나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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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거먼(73) 회장은 미국 유수의 투자회사인 피델리티에서 명성을 쌓은 것을 비롯해 투자경력이 올해로 50년에 달하는 백전노장의 외국인투자자.

미국 투자자들로부터 한때 10억달러의 자금을 모아 한국에 투자하기도 했다.

최근엔 환매로 운용규모가 줄어들었지만 한국 투자수익률은 여전히 시장수익률을 웃돌고 있다.

-최근의 한국증시를 어떻게 보는가.

"지나치게 주가가 하락한 과매도(Oversold) 상태다.

한국 상장사들의 주가수익비율(PER), 주당순이익(EPS) 증가율, EV/EBITDA(이자, 법인세, 감가상각비를 제하기전 영업이익에 대한 기업가치), PEG(주가수익비율을 성장률로 나눈 값) 등 여러 투자지표를 놓고 보면 다른 아시아국가들에 비해 여전히 저평가돼 있다.

PEG는 0.17로 필리핀(0.50) 인도(0.82) 중국(0.49)보다 낮은 수준이다"

-그런데도 주가는 좀체 반등하지 못하고 있다.

"국제유가가 아직 불안하고 D램가격이 상승세로 돌아서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두가지 요소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경제구조다.

유가상승은 2∼3개월후 무역수지 등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한국증시에 미치는 반도체주의 영향력 역시 막대하다"

-다른 악재를 꼽는다면.

"포드가 갑자기 대우차 인수를 포기한 것처럼 한국의 구조조정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아 불안하다.

한국의 지도층이나 정치인들은 벌써 구조조정 등 개혁이 완료된 것인양 안일한 자기만족감에 젖어든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국회가 정상화되지 않아 추가 공적자금이 조속히 조성되지 않고 있는 데다 금융지주회사법도 마련되지 않고 있다.

상장사들의 경영행태가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에 빠져 있는 것도 우려하는 점이다"

-상장사들의 모럴해저드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가.

"대기업들이 일반주주들의 이익보다 오너이익 중심의 경영방식을 완전히 버리지 못했다는 얘기다.

가족간의 경영세습이 이어지고 투명경영을 위한 집중투표제가 확산되지 못한게 좋은 예다.

계열사 지원관행은 여전하다.

실제로 한국증시를 대표하는 모 대기업은 최근 부실계열사를 지원키로 했다.

이런 점에서 한국기업들이 미국 뉴욕증권거래소나 나스닥시장에 적극 상장해 국제적으로 경영투명성을 높이거나 인정받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현재 투자하고 있는 한 한국기업의 회장 앞으로 직접 편지를 보내 미국시장 상장을 서두를 것을 촉구한 적이 있다"

-최근 김대중 대통령을 만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김 대통령이 밀레니엄 정상회의차 미국을 방문했을 때 저녁만찬에 초정받은 적이 있다.

그런데 김 대통령이 남북문제에 대해서만 열변을 토했을 뿐 구조조정 문제 등 투자자들의 관심사에 대해선 거의 언급을 하지 않아 의아스러웠다"

-한국시장에 대한 비관적인 시각과 낙관적인 시각이 뒤섞여 있다.

"낙관론에 더 무게를 두고 싶다.

한국은 중장기적으로 매력적인 시장이다.

아직도 세계에서 보기드문 경제성장률을 보이고 있다.

3∼6개월후를 내다본다면 지금이 투자할 좋은 기회라고 본다.

물론 D램가격 재상승, 국제유가안정, 저금리 현상 지속, 꾸준한 구조조정, 투명경영 등이 이뤄져야 한다.

현재 미국 투자자들을 상대로 한국에 투자할 좋은 기회라고 설득하고 있다"

-주로 어떤 한국기업 주식에 투자하고 있나.

"수익성이 높고 재무상태가 우량한 기업에 집중 투자해 왔다.

앞으로도 이런 투자원칙을 고수할 것이다.

PEG가 낮은 종목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다"

패어필드(미 코네티컷주)= 김홍열 기자 com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