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대통령이 지난 4일 대우자동차와 한보철강 매각실패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밝히자 경제부처 공무원을 비롯해 관련자들이 의아해 하고 있다.
5일 진념 재경부장관도 "정부도 책임질 것은 책임지고 채권단도 책임지도록 하겠다"고 발표하자 공무원들의 불안감과 불만이 커지고 있다.
관가에서는 이를 두고 지난 97년 환란을 초래한 정책실패의 책임을 물어 강경식 전 부총리, 김인호 전 경제수석을 법정에 세웠던 선례를 떠올린다.
재정경제부 관계자는 "협상이란건 항상 깨질 수 있는 것이고 최선을 다해 협상에 나선 사람들을 사후에 단죄하는건 문제"라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문책을 하더라도 외환위기 때처럼 현안을 해결한 뒤에 차분하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금융감독위원회 관계자는 "예전에도 대한생명 서울은행 등 매각에 실패한 사례가 많았는데 협상을 잘못했다고 처벌한다면 과연 누가 협상을 맡으려고 하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그동안 팔려던 물건(기업, 금융기관) 자체가 불량품이어서 우리가 주도권을 잡을 수 없는 한계도 고려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협상결렬이나 계약파기시 손해배상을 할 수 있도록 보완장치를 마련했어야 한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관료들은 그때 당시로선 최선의 방법을 선택한 것이라는 입장이다.
그럼에도 금감위는 대우차 한보철강 매각실패의 책임소재 규명작업에 나섰다.
당시 협상과정과 일지 등을 토대로 확인에 들어갔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책임을 입증하고 문책방법을 정하기가 쉽지 않다.
대우차의 경우 양해각서(MOU) 체결상태에서 포드의 협상포기에 대해 손해배상을 청구할 근거를 마련치 못했다고 책임을 묻긴 어렵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이근영 금감위원장은 "국제적으로 양해각서에 법적 구속력을 넣는 사례가 없고 만약 위약금 조항 등을 갖췄다면 사겠다고 나올 곳이 없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책방법에서도 현실적으로 해임 이상의 징계는 어렵다.
이헌재 전 재경부장관, 이용근 전 금감위원장 등은 이미 경질된 상태다.
대우차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의 이근영 전 총재가 금감위원장으로,한보철강 매각계약을 맺은 제일은행의 류시열 전 행장이 은행연합회장으로 재직중인 정도다.
이 금감위원장의 부분책임론이 일각에서 대두되는 점에 대해 금감위는 부담스런 표정이다.
관계자는 "협상초기부터 당시 이용근 전 금감위원장이 대우차매각을 대우구조조정협의회 오호근 의장쪽에 넘기고 산업은행은 손을 떼도록 지시해 이 위원장이 직접 관여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관가에서는 대우자동차 매각협상을 주도했던 오호근 의장이 문책대상 1순위일 것으로 점치는 분위기다.
그러나 오 의장은 이달말이면 임기가 끝나 해임시켜 봐야 실효성이 없다는 견해가 많다.
오 의장 외에 대우차와 한보철강의 매각협상 사무국 관계자들이 거론되고 있지만 윗선을 제쳐놓고 실무선에 책임을 묻는 것도 난센스란 지적이다.
김인식 기자 sskis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