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se Study] '인테리아 용품점' .. 궂은날 미리 대비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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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테리어용품 판매업은 중산층을 타깃으로 하며 경기에 민감하다는 특징이 있다.
요즘같이 경제 사정이 불안정할 때는 경기를 타는 업종선택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광고 대행사에서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했던 P씨(36.인천 부평)는 경제상황이 불안할 때 성급하게 업종 선택을 했다가 실패한 경험을 갖고 있다.
지난 97년 8월경 P씨는 오랜 직장생활에서 오는 권태감과 복잡한 서울 생활을 탈피하고 싶은 욕구로 창업을 결심하게 됐다.
부평에는 그가 평소 눈여겨보던 인테리어 소품점이 있었다.
마침 그 점포의 주인이 고객이었던 P씨에게 점포를 넘길 의사가 있음을 비췄다.
인테리어 소품점은 경기 변동에 민감한 업종이라 경제 사정이 나빠지면 매출이 뚝 떨어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P씨는 시각 디자인을 전공하고 디자인 관련 업무를 오랫동안 담당했던 자신의 안목을 믿었다.
점포를 인수해 창업하는데 든 비용은 약 7천만원.
권리금으로 1천7백만원,점포 보증금으로 4천만원 등이 투자됐다.
다양한 계층의 손님들을 확보하기 위해 5천원짜리 단품에서부터 1백50만원이 넘는 실내 가구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가격대의 제품을 갖췄다.
점포 크기는 7평.
인테리어 소품점을 하기에는 좁아 부피 있는 가구를 진열하기는 어려웠다.
남대문 등지로 발품을 팔며 찾아낸 다양한 인테리어 소품들을 매장에 비치하고 부족분에 대해서는 사진을 찍어 카다로그로 만들어 매장에 비치하는 등 손님들에게 다양한 아이템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했다.
부피있는 실내 장식용품은 손님이 카탈로그를 보고 선택하면 공급업자가 직접 배달해주는 방법으로 판매했다.
고가의 수입제품을 찾는 소비자를 위해 수입상을 찾아다니며 특별 주문하는 것도 P씨의 주요업무중 하나였다.
발로 뛰고 몸으로 부딪치는 노력 덕분에 독특한 인테리어 소품점으로 지역 손님들의 입소문을 타게 됐고 창업 후 3~4개월 동안은 월 순수입이 3백만~3백50만원에 달하기도 했다.
하지만 창업한지 1년쯤 지나 IMF 경제위기의 그늘이 드리워지면서 영업이 크게 부진해졌다.
매출이 뚝 떨어져 한달 소득이 1백만원선에서 멈추는 악순환이 계속됐다.
경기 불황으로 소비심리가 위축되면서 고객들이 고가 인테리어 제품을 외면했기 때문이다.
인테리어 제품 중에는 고가로 판매되는 수입제품의 마진이 높은데 이들의 판매가 저조해지면서 자연히 수익구조도 악화됐다.
결국 98년말 부동산 중개업소를 통해 물건값과 임대보증금으로 4천여만원만 받은채 점포를 다른 사람에게 넘겼다.
P씨의 실패 요인은 우선 경제사정이 불안정한데도 경기 변동에 민감한 업종을 선택했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둘째로 초기에 장사가 잘될 때 외부 환경에 변화가 있다는 걸 감지하고 조금씩 자본을 비축해둬야 했다.
세번째 매출이 30% 이상 하락곡선을 그으면 위기를 감지하고 업종 전환 등 대응책을 마련해야 했으나 매출이 절반 이상 떨어질 때까지도 열심히 하면 나아지겠지라며 지나치게 상황을 낙관했다.
결과적으로 영업 상황이 너무 나빠져 권리금을 전혀 받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경희 한국창업전략 연구소장/ 천리안 GO LKH
요즘같이 경제 사정이 불안정할 때는 경기를 타는 업종선택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광고 대행사에서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했던 P씨(36.인천 부평)는 경제상황이 불안할 때 성급하게 업종 선택을 했다가 실패한 경험을 갖고 있다.
지난 97년 8월경 P씨는 오랜 직장생활에서 오는 권태감과 복잡한 서울 생활을 탈피하고 싶은 욕구로 창업을 결심하게 됐다.
부평에는 그가 평소 눈여겨보던 인테리어 소품점이 있었다.
마침 그 점포의 주인이 고객이었던 P씨에게 점포를 넘길 의사가 있음을 비췄다.
인테리어 소품점은 경기 변동에 민감한 업종이라 경제 사정이 나빠지면 매출이 뚝 떨어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P씨는 시각 디자인을 전공하고 디자인 관련 업무를 오랫동안 담당했던 자신의 안목을 믿었다.
점포를 인수해 창업하는데 든 비용은 약 7천만원.
권리금으로 1천7백만원,점포 보증금으로 4천만원 등이 투자됐다.
다양한 계층의 손님들을 확보하기 위해 5천원짜리 단품에서부터 1백50만원이 넘는 실내 가구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가격대의 제품을 갖췄다.
점포 크기는 7평.
인테리어 소품점을 하기에는 좁아 부피 있는 가구를 진열하기는 어려웠다.
남대문 등지로 발품을 팔며 찾아낸 다양한 인테리어 소품들을 매장에 비치하고 부족분에 대해서는 사진을 찍어 카다로그로 만들어 매장에 비치하는 등 손님들에게 다양한 아이템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했다.
부피있는 실내 장식용품은 손님이 카탈로그를 보고 선택하면 공급업자가 직접 배달해주는 방법으로 판매했다.
고가의 수입제품을 찾는 소비자를 위해 수입상을 찾아다니며 특별 주문하는 것도 P씨의 주요업무중 하나였다.
발로 뛰고 몸으로 부딪치는 노력 덕분에 독특한 인테리어 소품점으로 지역 손님들의 입소문을 타게 됐고 창업 후 3~4개월 동안은 월 순수입이 3백만~3백50만원에 달하기도 했다.
하지만 창업한지 1년쯤 지나 IMF 경제위기의 그늘이 드리워지면서 영업이 크게 부진해졌다.
매출이 뚝 떨어져 한달 소득이 1백만원선에서 멈추는 악순환이 계속됐다.
경기 불황으로 소비심리가 위축되면서 고객들이 고가 인테리어 제품을 외면했기 때문이다.
인테리어 제품 중에는 고가로 판매되는 수입제품의 마진이 높은데 이들의 판매가 저조해지면서 자연히 수익구조도 악화됐다.
결국 98년말 부동산 중개업소를 통해 물건값과 임대보증금으로 4천여만원만 받은채 점포를 다른 사람에게 넘겼다.
P씨의 실패 요인은 우선 경제사정이 불안정한데도 경기 변동에 민감한 업종을 선택했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둘째로 초기에 장사가 잘될 때 외부 환경에 변화가 있다는 걸 감지하고 조금씩 자본을 비축해둬야 했다.
세번째 매출이 30% 이상 하락곡선을 그으면 위기를 감지하고 업종 전환 등 대응책을 마련해야 했으나 매출이 절반 이상 떨어질 때까지도 열심히 하면 나아지겠지라며 지나치게 상황을 낙관했다.
결과적으로 영업 상황이 너무 나빠져 권리금을 전혀 받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경희 한국창업전략 연구소장/ 천리안 GO LK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