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부는 10월 중순부터 가칭''과기부 R&D카드''를 발급한다고 한다.

이것은 일정 한도액과 기간이 정해진 직불카드 개념으로,연구책임자가 연구지출경비를 R&D카드로 결제하고,정산자료는 카드사용내역으로 대체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또 현금 등을 지출해야 하는 경우에 대비,몇가지 예외규정을 마련해 새로운 제도에 따른 불편함을 줄일 예정이라고 한다.

정부에서 연구비카드제를 도입키로 한 것은 대략 두가지 이유 때문일 것이다.

첫째 국가 연구비 집행의 투명성을 높이고,둘째 연구자들이 연구비 관리부담에서 벗어나 연구에 전념토록 하기 위한 것이다.

연구원들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연구비 정산을 놓고 고심했던 경험이 있다.

상급 감사기관에서 단돈 몇 만원도 안되는 사소한 내역까지 영수증을 통한 증빙을 요구할 때,연구원들이 제때에 이것을 맞춰주지 못하거나,기일이 지나서 연구비 사용 증빙서류를 제출하게 되면 자기 주머니 돈으로 처리 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연구비카드제는 과거의 잘못된 관행 일부 요소들을 개선하며,이로 인해 또다른 문제가 야기되지 않도록 추진돼야 할 것이다.

연구비카드제 실시는,우리나라와 같이 연구비 사용에 대한 제한 규정이 많은 나라에선 정부의 감사기능을 강화시켜 줄 수 있는 기능이 있다.

결국 연구 책임자에게 또다른 부담을 주는 건 아닌지 신중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치열한 국제경쟁 속에서 과학기술 발전에 헌신하는 연구원이 고유업무외 영역에 소중한 시간과 정신을 뺏기게 되면 연구수행에 지장은 물론 과학기술 경쟁력 강화에도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연구원에 대한 불신을 해소,해마다 연구비 집행내역과 관련돼 일어나는 소모적 논쟁과 불신에 종지부를 찍고 과학기술의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

21세기의 국가 산업경쟁력은 과학기술력의 발전에 크게 영향을 받을 것이라는 점에서 과학기술 정책은 국가의 운명과 직결될 수도 있다.

미국 일본 등의 선진국은 물론 아시아의 후발 주자인 중국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도 과학기술의 발전에 바탕을 둔 국가경쟁력 강화에 나서고 있다.

정부는 앞으로 예산의 약 5% 수준까지 과학기술 투자를 확대할 계획이다.

과학기술에 대한 예산 증대는 시대적 흐름으로 보아 필연적이고 바람직하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비록 우리의 과학기술 연구비가 전체 예산에 비해 상대적으로 크게 증대된다고 해도 아직 선진국가에서 투입하는 연구비에는 크게 부족,미국이나 일본의 10분의1 수준밖에 안 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예산 증대와 함께 중요한 것은 재원의 효율적 활용을 위한 제도적 장치다.

늘어나는 예산이 구태의연하게 집행된다면 오히려 투자 효율성을 떨어뜨려 연구비 증대는 그 효과를 보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우리의 연구개발 투자는 전세계 14위 선에 이르렀지만,경제성장에 대한 기여도는 미국이나 일본,심지어 대만보다도 훨씬 뒤진 상황이다.

과학 기술에 대한 예산비중이 늘어나는 만큼 효율적인 집행 방안을 신중하게 검토해 볼 필요성이 있다.

새로운 정책은 집행과정에서의 문제가 충분히 드러나지 않을 수도 있으므로 시행 전 치밀한 검토가 필요하다.

외국처럼 정부가 연구기관에 연구 관리를 절대적으로 위임하고,정부는 상위기관으로서 이를 투명하게 관리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한다는 발상전환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연구비의 진정한 효율성은 국가 경쟁력을 향상시키고,국가 과학기술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세계적인 연구결과를 얼마나 창출할 수 있느냐에 있다.

연구비카드제 도입을 계기로 더 이상 국민의 혈세로 조성된 연구비에 대한 불필요한 논쟁이 사라지게 되기를 바라며,연구원들도 정책집행이 실효를 거둘 수 있도록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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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약력=

△서울대 응용물리학
△美 시라큐스대 물리학 석사
△美 프린스턴대 물리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