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토리오 볼피 < ''일본빅뱅'' 저자 >

"획일적인 가치관과 관치금융으로 동맥경화에 걸린 일본보다 비교적 자유로운 사고를 가진 한국의 발전 가능성이 훨씬 큽니다.

그렇지만 정치적인 논리와 외압에 의한 개혁만으로는 한계가 있어요"

''일본빅뱅''의 저자 빅토리오 볼피(61)가 지난 9일 서울에 왔다.

이탈리아 태생인 볼피는 72년 이탈리아 상업은행 도쿄지점장으로 일본에 건너온 뒤 98년부터는 스위스의 세계적인 금융회사 UBS그룹 주일대표로 활약하고 있다.

"일본의 은행 시스템은 정부주도로 일시적인 효율성을 보이긴 했지만 글로벌 마인드 부족과 창의성 융통성 결여로 시대흐름을 따라잡지 못했습니다.

90년대 버블 붕괴 이후 발빠르게 적응하려 애쓰고 있습니다만 아직도 멀었죠"

그는 일본 은행들은 고객들의 욕구가 무엇인지를 파악하기에 앞서 자기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먼저 따진다면서 고객이 원하는 것을 간파하고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 도와줄 것인가를 고민해야 국제경쟁력이 생긴다고 말했다.

"한국 금융시스템도 문제가 많은 것 같습니다.

자발적인 개혁보다 정치적인 논리에 좌우되거든요.

무엇보다 시장중심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이 대목에서 그는 ''윔블던 효과''를 예로 들었다.

영국이 윔블던 테니스대회를 개방적으로 운영하자 다른 나라 선수들이 속속 우승을 차지해 마치 대회를 빼앗긴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로 인해 윔블던 대회는 더 유명해졌고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됐다는 것이다.

금융도 마찬가지.

영국의 유명한 은행들이 다른 나라에 넘어갔지만 결국엔 런던이 유럽 최대의 금융시장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한국은 당장 눈앞의 이익만 보지 말고 글로벌 경제체제에서 장기적으로 얻을 게 뭔가를 심사숙고해야 합니다.

시장체질 강화와 서비스 향상에 주력해야지요.

시장을 과감하게 개방하고 외국자본과 기술을 많이 들여올수록 발전할 것입니다.

아무리 문을 많이 열어도 한국 인력이 우수하기 때문에 걱정할 것 없어요"

지난 89년 평양을 방문했던 그는 남북경협과 통일문제에 있어서도 너무 서두르는 감이 있다며 장기적인 안목으로 신중하고 내실있게 접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고두현 기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