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통령 후보들간의 첫 번째 TV토론이 지난 주 보스턴에서 벌어졌다.

토론장 바로 옆에 자리 잡은 케네디 기념도서관은 행사의 스폰서 역할을 했을 뿐만 아니라 그 이름과 바닷가에 세워진 독특한 건물모양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재클린의 특별한 부탁을 받아 이 건물을 설계했던 페이(I M Pei)는 저명한 중국계 건축가다.

그 후에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 입구의 피라미드를 설계하여 다시 화제가 되었는데 그가 명성을 얻기 시작한 것은 70년대 중반에 보스턴 지역에서 가장 높은 빌딩인 존 행콕 타워(62층)를 디자인하면서 부터였다.

이 건물은 바깥 전체가 유리로 되어 있어 큰 거울 역할을 하고 있다.

인접한 트리니티 교회의 장엄한 자태와 푸른 하늘, 그리고 흰 구름이 초대형 거울에 담겨져 있는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지금은 이렇게 멋진 건물이지만 처음 완성되었을 때는 그야말로 사고뭉치였다.

7천5백만달러를 들여 준공한 건물이 곧바로 시민들의 공포의 대상이 되었던 것이다.

설계상의 실수가 있었던데다 마무리도 잘못해 바람이 불면 빌딩이 심하게 흔들리는가 하면 고층의 창유리가 튕겨져 나와 땅바닥으로 떨어지면서 박살이 나곤 했던 것이다.

건설회사는 하는 수 없이 1만3백44개의 대형 유리를 모두 뜯어내어 갈아 끼우고 그밖의 결함도 고치느라 4년간에 걸쳐 1억3천만달러를 더 쏟아 부었다고 한다.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진 격이었다.

경제개혁도 자칫하면 이와 비슷한 과정을 밟을 수 있다.

설계도와 완성 후 예상되는 모습이 멋져 보이기는 해도 어딘가에 결함이 있을 수 있고 또 마무리 작업이 소홀해질 수도 있는데 이렇게 되면 결국 국가와 국민들이 개혁 초기에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큰 비용을 치르게 된다는 얘기다.

이미 1백10조원 이상의 공적자금을 삼키고도 여전히 부실하기만 한 금융부문을 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지금 시점에서 경제팀이 할 일은 개혁설계상의 결함과 기득권집단의 저항을 점검하는 한편, 마무리 작업에 열과 성을 쏟는데 있다고 하겠다.

이렇게 갈 길이 먼 사람들인데도 그들의 발목을 잡는 일이 빈번해져서 걱정이다.

무엇보다 일할 시간은 제대로 주지 않고 채근만 해대는 사람들이 많다는 게 그렇다.

새 경제팀이 들어선 지가 두달밖에 되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이렇다할 업적이 없다고 아우성들이다.

대우차나 한보철강의 해외매각을 실패로 몰고간 원인 중의 하나가 이러한 조급증 때문이었다.

시한을 정해 놓고 협상에 나갈 사람을 밀어 붙이면 결국 엉성한 합의나 계약만 얻어 올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뻔히 보면서도 그 버릇을 고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우려되는 것은 청와대 쪽에서 경제장관들에 대해 직접 간접으로 불신감을 나타내고 있다는 점이다.

경제팀이 너무 낙관적이라는 비판이 돌더니 지난 주 이례적으로 소집된 경제장관회의에서 는 대통령이 앞으로 개혁과제를 포함한 각종 경제 현안을 직접 챙기겠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김대중 대통령이 과거의 경제부총리들을 한자리에 모아 의견을 청취한 일도 보기에 따라서는 현 경제팀에 대한 불신감의 표시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일들이 계속된다면 경제 장관들은 자신감을 잃고 해야 할 일을 제대로 못해 신뢰를 더욱 잃고 마는 악순환으로 연결될 것이다.

위축되고 떼밀려서 맹목적으로 추진한 개혁과제는 자칫하면 국민들에게 엄청난 고통과 희생을 불러올 위험이 있다.

물론 경제팀 자신들의 잘못도 적지 않다.

말만 요란했고 눈치 작전을 펴면서 위험하고 힘든 과제를 피해 왔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그러나 새로운 위기론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개혁작업의 완성을 위해서 가장 중요한 시점에 와 있는 경제팀에 대해서는 때이른 책임 추궁보다 소신있게 일할 신뢰와 시간을 주어보는 것이 더 바람직한 방법이 아닐까.

믿지 못하겠으면 아예 쓰지를 말 일이고 일단 쓴 사람은 믿어야 한다는 옛사람의 지혜를 되새겨 볼 일이다.

< 본사 주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