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상황이 지금 어렵긴 하지만 제2의 외환위기를 걱정할 정도는 아니다"

한국경제와의 인연이 각별한 미셸 캉드시 전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이렇게 한국경제의 현주소를 진단했다.

한국의 금융구조가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많이 건전해졌기 때문에 위기재연을 운운하는 것은 지나친 기우라고 말했다.

그러나 구조개혁이 지속돼야만 한국경제의 앞날이 밝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국경제가 지금 해야 할 일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어떤 외풍에도 견딜수 있는 기반을 확립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국경제신문은 창간 36주년을 맞아 캉드시 전 IMF 총재와 특별대담을 가졌다.

< 만난 사람 = 강혜구 파리 특파원 >

---------------------------------------------------------------

- 제2의 외환위기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올 정도로 최근 한국의 경제상황이 좋지 않다.

한국의 외환위기를 수습한 당사자로서 어떻게 보는가.

<> 미셸 캉드쉬 =지금 한국의 경제상황은 97년의 환란때와는 다르다.

따라서 3년전과 같은 환란이 재발할 것으로 보지 않는다.

물론 고유가로 한국경제가 어려움을 겪고 있고 기업의 부채상환 만기일이 다가오고 있어 금융시장이 상당한 심리적 부담을 느끼고 있는 것 같다.

최근 대우자동차의 해외매각 차질도 적잖은 불안요인이 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한국은 지난해 10%가 넘는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다.

올해는 성장폭이 좀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지금 한국경제에 당장 위급한 문제가 잠복해 있어서라기보다는 자연스런 현상이다.

환란으로 경제가 바닥을 치고 올라오면서 지난해 큰 폭의 성장을 기록했고 지금은 정상수준으로 성장률이 환원되고 있는 과정에 있다.

이 때문에 내외적으로 여건이 좋다고 하더라도 지난해 만큼의 성장률을 기록하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이같은 성장속도 둔화를 제2의 위기론과 연관시키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한국은 위기직후 개혁을 통해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였다.

그런데 최근 금융기관의 불법대출 사건 등이 다시 발생하는 것은 개혁에 대한 의지가 약해진것은 아닌가하는 생각도 든다.

한국이 위기를 극복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한국의 궁극적 목표는 위기 극복이 아니라 위기를 기회로 삼아 어떤 외풍에도 견딜수 있는 경제기반을 다지는 것이다.

- 총재시절 한국의 외환위기를 처리하면서 한국경제에 대해 많은 것을 느꼈으리라 생각된다.

한국이 키워야 할 산업과 버려할 산업은 무엇인가.

<> 캉드쉬 =IMF는 한 국가에 대해 어떤 산업을 포기하고 어떤 분야를 육성하라고 하지 않는다.

이는 IMF의 기능과 업무가 아니다.

이 문제는 기업인이 가장 잘 알며 정부와 기업인이 결정해야 할 문제다.

기업의 경쟁력 확보를 위해선 세계시장의 방향과 앞날을 파악할 수 있는 최고 경영인의 통찰력이 필요하다.

또 정부가 국가의 장기적 산업경쟁력 확보를 위해 해야 할 일은 기업가들이 이를 추진할 수 있도록 정책적 토양기반을 갖춰 주는 것이다.

과거 한국기업은 과도한 부채에 의존한 중복투자라는 실수를 범했다.

이는 기업의 재무구조를 약하게 만들었고 환란의 원인으로 작용했다.

따라서 기업은 경쟁력있는 분야를 개발하고 이에맞는 투자및 경영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자금조달도 과거 90년대처럼 불투명한 방법이 아닌 건전한 자금시장과 외국인 직접투자 유치를 통해 이뤄져야 한다.

- 한국은 외환위기를 잘 극복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요즘의 한국경제상황을 보면 과연 이런 평가가 합당한지 의문이다.

<> 캉드쉬 =한국은 외환위기를 현명하게 극복했다.

어느 국가보다 빨리 위기에서 벗어났다.

97년말 구제금융 지원 협의차 한국을 방문했을때 한국정부 대표단은 위기상황에 대처하는 한국민의 의지와 단결력을 강조하며 94년 멕시코보다 빠른 시간안에 위기를 극복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이 국가부도사태 직전까지 치달았던 긴박한 상황에서 벗어나 오늘 좋은 평가를 받게된 것은 당시 위기 해결책을 신속히 파악한 정부의 능동적 반응도 중요했지만 위기를 극복하겠다는 전국민의 거국적 의지와 노력도 큰 몫을 했다.

국가를 위기에서 구출하겠다는 국민의 의지는 대단했다.

한국민이 보여준 이같은 정신과 태도를 매우 존경한다.

한국환란처리후 많은 사람들이 나를 한국전문가라고 하는데 전문가라기 보다는 한국을 높게 평가하는 사람이라고 하는게 더 정확할 것이다.

IMF 총재직에서 물러난 지금도 자신있게 할 수 있는 말은 97년 한국정부단과 함께 수행한 IMF 프로그램이 한국의 위기타개에 긍정적으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지금 한국의 금융구조는 개혁을 통해 많은 부문이 시정 개선됐으며 한국의 경제구조는 위기발생전보다 건전해졌다.

- IMF 처방이 옳았다는 말인데 하지만 당시 일부에서는 IMF 프로그램이 위기 당사국에게 너무 가혹하다는 비판도 강했다.

곧 한국환란 발생 3주년이 되는데 IMF 처방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 캉드쉬 =흔히들 IMF를 응급환자에게 긴급 수혈을 하는 의사나 화재진압 소방대원으로 비유한다.

어떤 국가에서 경제위기가 발생할 경우 문제해결을 위해 가장 먼저 투입되는게 IMF 아닌가.

이것이 IMF의 근본적 기능이자 임무다.

IMF는 태국에서 발생한 화재가 아시아지역 경제에 중요한 한국에까지 확산된 것을 어떻게 진화할 것이냐는 방법론을 놓고 많은 고민을 했다.

당시 처방전이 한국민들에게 좀 과하게 보였는지 몰라도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우리는 화재진압에 투입된 소방대원처럼 행동했고 또한 그런 사명감으로 사태를 수습했다.

과거 외세침략을 많이 받은 한국의 역사를 볼 때 IMF 구제금융 프로그램이 외세의 간섭과 개입으로 비쳐져 IMF나 본인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을 수도 있다.

또 당시 상황이 긴박하다 보니 IMF 프로그램을 좀 더 침착하게 자세히 파악하고 분석하는 여유가 없었을 수도 있다.

IMF의 처방은 긴급 응급책 이상의 내용을 담고 있다.

즉 전분야 구조개혁을 통해 같은 오류가 발생되지 않도록 건강한 경제구조를 만들어 주자는 내용의 장기적 계획안이 들어 있다.

당시 일부에서는 IMF 처방전을 비난하고 심지어 일부 한국언론은 본인을 저승사자로 비교하기도 했다.

한국측과 협상하면서 당장 병치료를 위해 삼키는 약이 좀 쓸지는 모르지만 시간이 흐르면 이해할 것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나에 대한 한국내 부정적 평판은 긍정적 결과가 가시화되면 없어질 것이라 믿고 IMF 총재로서 맡은 임무를 수행했다.

그래서 한국의 위기극복이 마치 내 일인 것처럼 기쁘다.

또 구제금융 지원후에도 한국경제에 많은 관심을 갖고 계속 지켜봤으며 지금도 그렇다.

- 한국은 아직 금융뿐만 아니라 기업부문의 구조조정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여기엔 정치적 이해관계가 뒤얽혀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 캉드쉬 =경제위기로 시작된 개혁은 계속 추진돼야 한다.

97년 환란 발생 직후 나는 "위기가 기회가 될 수 있다"는 말은 한 적이 있다.

한국은 슬기롭게 위기를 극복하는 저력을 보여다.

그런데 위기가 수습되었다고 개혁의지가 꺽인다면 참으로 유감스런 일이다.

또 경제상황이 나아지자 다시 정치적 불화와 정치인들의 논쟁이 시작되는 것같아 안쓰럽다.

이는 조직적 개발정책을 추진하는데 방해만 될 뿐이다.

정치가 경제를 방해해서는 안된다.

한국의 외환위기는 겨우 3년전의 일이다.

벌써 위기의 교훈을 잊어선 안된다.

정치적 이해관계로 구조개혁에 차질이 빚어줘서는 안된다.

한국은 외환위기때 빠른 금융구조개혁에 착수해 위기를 극복했다.

하지만 아직도 건강한 금융구조 확립을 위해서는 남아 있는 과제가 많다.

지금 한국이 개혁을 추진해야 하는 이유는 97년말의 위기때와는 다르다.

긴급 위기해결책이 아니다.

이젠 장기적 안목에서 어떤 외풍에도 견딜수 있는 강력한 경제기반을 확립해야 한다.

- 장기적으로 한국경제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 캉드쉬 =한국경제의 취약점은 97년의 IMF 프로그램이 잘 설명하고 있다.

당시 금융시스템은 외부에서 발생한 문제에도 저항할 수 없을 만큼 허약했다.

원화가치폭락과 외환보유고 고갈로 시작된 외환위기는 당시 한국 금융구조에서는 피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이게 바로 한국이 갖고 있던 가장 큰 문제점이었다.

그후 금융구조개혁을 통해 여러 가지가 개선되긴 했지만 건강한 금융시스템 및 금융기관의 경쟁력 확보를 위해 해야할 과제는 아직도 많다.

이는 기업의 건전한 재무구조와도 연관된다.

그리고 시장경제와 관련해 국가의 지나친 개입도 개혁을 통해 사라져야 한다.

비록 한국의 구조조정이 아직 미완성이지만 한국경제를 긍정적으로 본다.

한국은 높은 기술력과 국민의 성실성이란 장점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화 시대에 필요한 경제적 요건과 장점을 갖추고 있는 한국경제의 미래는 밝다.

물론 이는 97년 위기 당시 결심한 개혁이 지속돼야 한다는 전제하에서다.

- 최근 프라하에서 개최된 IMF.세계은행 연차총회에서 보았듯이 전세계적으로 "세계화반대" 목소리가 거세다.

<> 캉드쉬 =정보통신 기술과 교통수단의 발달로 세계는 하나의 지구촌이 되었다.

세계화는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대세다.

지난 아시아 환란에서도 보았듯이 태국처럼 작은 나라의 위기가 순식산에 주변국으로 확산돼 세계경제전체를 위협하지 않았는가.

반세계화를 외치기 보다는 세계화를 통해 전 지구촌인이 얻을 수 있는 혜택과 효과적인 세계화 방법론을 생각해야 한다.

세계화는 잘 관리하고 통제하면 모든 이를 위한 경제발전의 기회가 될 수 있다.

국제기구와 각국 정부의 긴밀한 공조와 협력이 필요하다.

세계화 정책 및 관리는 일부 선진국 정부들 사이에서만 이뤄져서는 안된다.

세계화대열에서 후진국들의 이탈을 막으려면 이들에 대한 개발 지원과 정책적 도움이 우선돼야 한다.

hyeku@coom.com

---------------------------------------------------------------

[ 캉드쉬 요즘은... ]

97년 외환위기를 통해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미셸 캉드쉬(67) 전IMF 총재는 현재 프랑스최대 싱크탱크인 국제경제전망 및 정보연구소(CEPII) 회장직을 맡고 있다.

얼마전에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로부터 "정의와 평화를 위한 교황청위원회" 위원으로 임명됐다.

지난 2월 IMF 총재직에서 물러난 그는 공식적으론 IMF를 떠났지만파리IMF사무소에 집무실을 두고 수시로 출근, IMF관련 업무를 보고 있다.

그는 프랑스최고의 명문인 국립행정대학원(ENA)을 지난 60년에 졸업한 후 재무부에 들어갔다.

재무부에서 20년간 근무하며 요직을 두루 거쳤다.

84년부터 3년간 프랑스 중앙은행총재를 지낸후 87년에 7대 IMF총재에 취임했다.

그는 13년간의 IMF총재 시절의 경험담을 담은 회고록을 조만간 출간할 예정이다.

97년 한국 외환위기를 처리하며 한국에 대해 많이 알게 됐고 또한 한국인의 위기극복 의지를 존경한다는 그는 회고록 내용중에 한국관련 부분도 상당히 있을 것이라고 귀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