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이 세계 하이테크 산업의 "수퍼파워"로 떠오르고 있다.

방위산업을 모태로 소박하게 시작된 이스라엘 IT산업은 95년부터 시작된 인터넷 열풍 속에 가속페달을 밟으며 끝을 모르고 질주하고 있다.

이스라엘 나스닥 상장업체 수는 미국,캐나다에 이어 세번째로 많으며 미국 정보통신전문지 와이어드는 이스라엘을 미국 등에 이어 세계 하이테크 강국 4위로 꼽았다.

하이테크 산업은 이스라엘 경제를 한단계 끌어올리는 견인차 역할도 담당했다.

최근 3년동안 하이테크 분야의 연평균 수출성장률은 다른 산업분야에 비해 3배나 높은 12%에 달했다.

또 같은기간 외국기업들이 하이테크기업을 인수하기 위해 이스라엘에 쏟아부은 금액만 모두 1백억달러에 이른다.

모래, 자갈로 뒤덮힌 척박한 땅 이스라엘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변모시킨 하이테크 산업의 저력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이스라엘의 하이테크 기업들과 정부기관, 대학 등을 돌아보며 현황과 원인을 짚어본다.


지중해 연안의 작열하는 태양을 머리위로 하고 텔아비브 북동쪽으로 20여분 간 차를 몰아가면 새 건물들이 줄지어 늘어선 광경이 눈에 들어온다.

아직까지 누런 벽돌로 지어진 고풍스런 건물들과 해변가의 현대식 빌딩들이 혼재하는 시내의 풍경과는 새삼 다른 모습이다.

끊임없이 새 빌딩들이 들어서고 있는 이곳은 텔아비브를 둘러싼 첨단하이테크 단지들 중 하나인 "킬리야트 아티딤".

우리말로 "미래의 도시(City of Future)"란 뜻이다.

이스라엘의 미래를 책임지는 이곳의 중심부에는 IT 분야의 "틈새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쟁쟁한 신생기업(startup company)들이 자리잡고 있다.

그 중 하나가 "플래시 디스크의 파이오니아"라고 불리는 M-시스템.

이 업체는 플래시디스크라는 틈새분야에서 독보적인 기술을 선보이면서 세계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플래시 디스크란 일반적인 메모리에 특별한 소프트웨어를 장착, 하드디스크처럼 쓸 수 있게 한 새로운 개념의 저장장치.

이곳에서 만난 로니트 마오르 최고재무담당자는 "기존 저장장치를 쓸 수 없는 PDA, 웹폰, 웹TV, 스마트폰 등 인터넷 가전기기가 빠르게 늘어나면서 이 제품의 수요는 폭발적으로 커지고 있다"고 소개했다.

M-시스템의 매출은 98년 1천6백만달러, 99년 3천만달러로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렸다.

올해에는 상반기 매출만 3천7백만달러를 기록, 이미 지난해 전체매출을 넘어섰다.

M-시스템은 정보통신의 틈새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기업들의 작은 예에 불과하다.

이스라엘 신생기업들 전체가 제각각 특정분야의 개척자라고 부른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방화벽의 대명사 체크포인트,세계 최초로 실시간메시징 프로그램 ICQ를 선보인 미라빌리스를 비롯 ADSL기술의 개척자 오르킷, 음성인식의 선두주자 루비디움 등은 틈새시장을 파고 들어 세계 IT 업계의 선두주자로 떠오른 대표적인 예로 꼽힌다.

이들 기업들은 텔아비브 근교의 하이테크 단지들을 비롯 하이파, 예루살렘을 비롯한 이스라엘 전역에 골고루 위치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실리콘밸리는 어디냐"는 질문에 로니 벤 모하 이스라엘 수출공사(IEI) 국제관계 담당관이 "이스라엘 전체가 실리콘 밸리"라고 답한 것도 이런 이유때문이다.

이스라엘이 왜 틈새시장에 중점을 두는가에 대한 분석은 다양하다.

엘버 게쉔 테크니온 공대 컴퓨터공학과 교수는 "이스라엘 기업들이 틈새시장에 촛점을 맞추는 것은 빈약한 자원으로 거대기업들과 경쟁하기보다는 특화된 분야에서 독보적인 기술을 선보이는게 최상의 전략이라는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말한다.

반면 이스라엘의 사람들만의 독특한 특성 때문이라는 시각도 있다.

김기섭 현대상사 이스라엘 지사장은 "이곳 사람들은 일을 시키면 지시하는 대로 하지 않고 자기 방식대로 하는 면이 있다"며 모방을 싫어하는 이스라엘 국민성이 다른 기업이 아직 가지 않은 분야에 집중하게 만들었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이스라엘 사람들 20명 이상 모여 기업을 만들면 반드시 망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자기 개성에 대한 이곳 사람들의 집착은 유명하다.

이스라엘의 틈새시장 공략은 통신기업들에서 잘 나타난다.

특히 인터넷을 통해 데이터와 음성, 이미지 등을 통합하는 분야에서는 단연 돗보인다.

보칼텍이 음성, 데이터 통합기술에서 선도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TD소프트, 오디오코드, 아렐넷, 컴매치 등이 그 뒤를 잇고 있다.

RAD 비전은 인터넷을 통해 이미지를 전송하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으며 파워디자인은 랜(LAN)을 통해 음성, 영상 데이터는 물론 전력까지 공급하는 장비를 선보여 주목받고 있다.

길라트새털라이트 네트웍스는 전세계 위성통신장비 시장의 40%를 점유하고 있으며 ECI텔레콤과 타디란 커뮤니케이션은 각각 디지털 회선 증폭장비, 무선가입자망(WLL) 분야에서 선도적인 위치를 점유하고 있다.

하이테크기업에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이스라엘 벤처캐피탈 회사 버텍스의 요람 오론 사장은 "이스라엘 기업들은 앞으로도 통신과 인터넷 인프라 부문에서 지속적인 발전을 이뤄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텔아비브(이스라엘)=송대섭 기자 dsso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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