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 '무섬마을'] '육지속의 섬' 그섬에 가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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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에 들어서자 재래식 양봉이 한눈에 들어온다.
생전 처음보는 진풍경이다.
토방(처마밑의 땅)한 가운데 놓인 양봉은 나무 두 토막을 붙인 후 하단 부분에 벌이 드나들 구멍만 남겨놓고 위 중간 아래의 틈을 흙으로 전부 봉했다.
새끼 손가락만한 말벌이 "윙 윙"소리를 내며 주위를 맴돌고 있어 긴장감마저 든다.
대문 안에는 소는 간데 없고 여물통만 덩그러니 남아 있다.
경북 영주시 문수면 무섬마을.영주시내에서 자동차로 30분정도 거리에 있는 무섬은 "육지속의 섬"이다.
마을 뒤쪽 일부가 육지로 연결돼 있을 뿐 마을 주변이 안동 하회마을이나 경북 의성포마을처럼 온통 강물로 격리돼 있다.
안동 하회마을이나 예천 의성포(회룡포)마을은 많은 관광객들로 인해 번잡하다.
관광명소로 부상하면 상업화되는 것처럼.이에 반해 무섬은 별로 알려지지 않은 곳이다.
관광객들의 발길이 아직 닿지 않아 한옥마을로서의 적막함과 조용함을 간직하고 있다.
무섬마을은 현지에서 수도리 마을로 불린다.
"물위에 떠있는 섬"이라는 뜻의 수도리가 무섬으로 바뀐 연유는 아는 이가 없다.
물섬으로 불리다가 무섬으로 됐을 것으로 추측할 뿐이다.
마을을 휘감고 도는 강은 내천이다.
낙동강 상류 물줄기다.
강변에는 넓은 백사장이 펼쳐져 있고 깊은 곳이라야 허벅지에 찰 정도로 수심이 얕다.
시간을 정지시키듯 맑은 강물이 도도히 흐른다.
무섬으로 연결되는 유일한 통로인 수도교를 지나는 순간 한 노인이 소달구지를 끌고 강을 건넌다.
마을입구에서 만난 박건우씨(63)는 농토가 외지에 있어 가는중이라고 설명한다.
마을 주민들은 강건너 영주쪽 땅을 외지라고 부른다.
박 씨는 "여름에 모래로 둑을 만들고 발을 쳐 물고기를 많이 잡는다"며 "이런 개매기 하는 곳은 여기밖에 없다"며 은근히 자랑한다.
무섬마을에는 현재 50여가구가 살고 있다.
젊은이들은 대부분 외지로 나가고 노인네들만이 옛집을 지키고 있다.
마당 구석과 몇 평 안되는 밭뙤기에 심은 고추 토란 호박 감나무등을 돌보는 게 이들의 소일거리다.
고색창연한 옛 기와집과 전통 가옥이 많지만 지은지 얼마 안되는 양옥도 2~3채 있어 영 눈에 거슬린다.
하지만 울타리마다 호박넝쿨이 출렁이고 마당과 툇마루에는 고추 대추 호박 토란을 말리는 전경이 고향에 온 듯한 느낌을 줄 정도로 정겹다.
반남 박 씨 11대조인 박 수 선생이 이곳에 거처하던 고택이 남아있는 것으로 볼 때 17세기경부터 사람들이 이 곳에서 살았던 것 같다.
한옥 구조는 경북 북부지방의 전형적인 형태인 "ㅁ"자 식으로 주로 양반들이 거처하며 풍류를 즐겼을 것으로 추측된다.
돌아오는 길에 화엄종찰인 부석사를 들렀다.
부석사는 676년 의상대사가 창건한 5대 고찰중 하나로 우리나라 최고 목조건물인 무량수전을 비롯한 많은 문화재를 간직하고 있다.
매표소에서 일주문을 지나 무량수전까지 이어지는 길에 수백 년된 소나무와 단풍나무 은행나무들이 빼곡해 단풍구경으로 그만이다.
우리섬여행클럽(756-7066)등 답사회가 22일 현지를 안내한다.
영주=이성구 기자 sklee@hankyung.com
생전 처음보는 진풍경이다.
토방(처마밑의 땅)한 가운데 놓인 양봉은 나무 두 토막을 붙인 후 하단 부분에 벌이 드나들 구멍만 남겨놓고 위 중간 아래의 틈을 흙으로 전부 봉했다.
새끼 손가락만한 말벌이 "윙 윙"소리를 내며 주위를 맴돌고 있어 긴장감마저 든다.
대문 안에는 소는 간데 없고 여물통만 덩그러니 남아 있다.
경북 영주시 문수면 무섬마을.영주시내에서 자동차로 30분정도 거리에 있는 무섬은 "육지속의 섬"이다.
마을 뒤쪽 일부가 육지로 연결돼 있을 뿐 마을 주변이 안동 하회마을이나 경북 의성포마을처럼 온통 강물로 격리돼 있다.
안동 하회마을이나 예천 의성포(회룡포)마을은 많은 관광객들로 인해 번잡하다.
관광명소로 부상하면 상업화되는 것처럼.이에 반해 무섬은 별로 알려지지 않은 곳이다.
관광객들의 발길이 아직 닿지 않아 한옥마을로서의 적막함과 조용함을 간직하고 있다.
무섬마을은 현지에서 수도리 마을로 불린다.
"물위에 떠있는 섬"이라는 뜻의 수도리가 무섬으로 바뀐 연유는 아는 이가 없다.
물섬으로 불리다가 무섬으로 됐을 것으로 추측할 뿐이다.
마을을 휘감고 도는 강은 내천이다.
낙동강 상류 물줄기다.
강변에는 넓은 백사장이 펼쳐져 있고 깊은 곳이라야 허벅지에 찰 정도로 수심이 얕다.
시간을 정지시키듯 맑은 강물이 도도히 흐른다.
무섬으로 연결되는 유일한 통로인 수도교를 지나는 순간 한 노인이 소달구지를 끌고 강을 건넌다.
마을입구에서 만난 박건우씨(63)는 농토가 외지에 있어 가는중이라고 설명한다.
마을 주민들은 강건너 영주쪽 땅을 외지라고 부른다.
박 씨는 "여름에 모래로 둑을 만들고 발을 쳐 물고기를 많이 잡는다"며 "이런 개매기 하는 곳은 여기밖에 없다"며 은근히 자랑한다.
무섬마을에는 현재 50여가구가 살고 있다.
젊은이들은 대부분 외지로 나가고 노인네들만이 옛집을 지키고 있다.
마당 구석과 몇 평 안되는 밭뙤기에 심은 고추 토란 호박 감나무등을 돌보는 게 이들의 소일거리다.
고색창연한 옛 기와집과 전통 가옥이 많지만 지은지 얼마 안되는 양옥도 2~3채 있어 영 눈에 거슬린다.
하지만 울타리마다 호박넝쿨이 출렁이고 마당과 툇마루에는 고추 대추 호박 토란을 말리는 전경이 고향에 온 듯한 느낌을 줄 정도로 정겹다.
반남 박 씨 11대조인 박 수 선생이 이곳에 거처하던 고택이 남아있는 것으로 볼 때 17세기경부터 사람들이 이 곳에서 살았던 것 같다.
한옥 구조는 경북 북부지방의 전형적인 형태인 "ㅁ"자 식으로 주로 양반들이 거처하며 풍류를 즐겼을 것으로 추측된다.
돌아오는 길에 화엄종찰인 부석사를 들렀다.
부석사는 676년 의상대사가 창건한 5대 고찰중 하나로 우리나라 최고 목조건물인 무량수전을 비롯한 많은 문화재를 간직하고 있다.
매표소에서 일주문을 지나 무량수전까지 이어지는 길에 수백 년된 소나무와 단풍나무 은행나무들이 빼곡해 단풍구경으로 그만이다.
우리섬여행클럽(756-7066)등 답사회가 22일 현지를 안내한다.
영주=이성구 기자 s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