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가 자랑하는 패션명품 에르메스.말과 마구 밧줄 마차 등 에르메스 고유의 심볼과 로고는 상류사회의 상징으로 인식되고 있다.

1837년,티에리 에르메스(Thierry Hermes)는 파리 마드레인 광장의 바스 듀 름파르(Rue Basse-du-Remp art)로에 마구상을 열고 안장과 마구 용품을 판매했다.

"큰 원형안의 사륜마차와 마부 그림"이 에르메스의 심볼로 자리잡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티에리는 당시 교통수단인 마차를 끄는 말에 필요한 용구와 안장 장식품을 수작업을 통해 만들어냈으며 1867년 세계 박람회에서 1등 메달을 받는 등 제품의 섬세함과 튼튼함을 국제적으로 인정받았다.

1879년 아버지로부터 전통의 프랑스식 장인정신을 이어 받은 그의 아들은 부유촌인 포브룩 쌩또노레 24번가(24,Faubourg Saint Honore)로 매장을 옮기고 마구 사업을 더욱 확대시켰다.

그는 왕실과 귀족들에게 안장과 마구용품을 납품할 정도로 명성을 얻었다.

이처럼 마구상으로 이름을 날리던 에르메스가 패션브랜드로 변신하게 되는 시기는 1918년 에밀 에르메스가 3대째 가업을 이으면서다.

자동차가 등장하는 등 교통문화가 급변하면서 에르메스는 변화에 따른 새로운 생활양식을 구상하게 되었다.

그는 안장대신 자동차를 타고 여행을 즐기는 사람들을 겨냥해 "새들 스티칭(saddle stitching,말안장을 만들 때 쓰는 독특한 박음질법)"을 적용한 튼튼한 가죽 가방을 세상에 내놓았다.

1922년경에는 벨트 장갑 손목시계 여행도구세트 자동차 소품 등에 새들 스티칭을 사용한 고급 가죽 소품들을 포함시켰다.

또 당시 유럽에는 소개되지 않았던 지퍼를 처음으로 사용했다.

켈리라고 이름 붙여진 핸드백과 아젠다(수첩),싹 아 데페쉐(기자들을 위한 가방)등 에르메스의 신화적 제품이 출시된 시기도 이때다.

1929년 에르메스는 뉴욕에 첫 부띠끄를 오픈하면서 국제적인 브랜드로 성장하게 된다.

그후 향수 타이 여성복과 남성복 등 패션분야에 걸쳐 발전을 거듭해 왔다.

1978년 그룹의 회장으로 선출된 쟝 루이 뒤마는 식탁장식용품 등 새로운 라인을 도입했다.

또 아시아와 호주까지 시장을 확대했다.

에르메스사는 현재 전세계에 2백50여개 부티크를 운영중이며 약 4천명의 직원을 고용하는 등 국제적 그룹으로 성장했지만 그러나 처음 에르메스를 창업했을 때의 정신은 지금까지도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어떤 대가를 지불하고라도 최고의 품질을 얻어낸다"는 정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