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들이 부실징후기업의 생사(生死)를 가르기 위한 판정작업을 이번주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은행이 판정대상으로 고른 1백90~2백개 부실징후기업중 가장 주목을 받고 있는 기업은 ''빅5''로 지칭되는 현대건설 동아건설 쌍용양회 고합 진도 등 5개 대기업.

이중 동아건설 외에는 회생쪽에 무게가 실려 있다.

이 경우 정부와 채권단은 대마불사(大馬不死)가 재연된다는 비판에 시달릴 공산이 크다.

회생기업들에 대해선 빚을 주식으로 바꿔 채무부담을 현저하게 덜어주는 출자전환같은 수단이 동원될 예정인데 이 과정에서 대주주가 손을 떼는 상황도 배제할수 없다.

◆ 현대건설 =현대건설은 주채권은행인 외환은행과 자구계획약정을 맺었지만 지난달 목표치 2천8백억원에 못미친 1천억원 밖에 자구계획을 이행하지 못했다.

현대중공업 주식 5백60만주로 교환사채(EB)를 발행하려던 계획이 어긋난 탓이다.

황학중 외환은행 상무는 "자구계획이 제대로 추진되어야만 한다"고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정부는 그러나 현대건설의 자구 미흡이 시장여건 악화에도 원인이 있는 만큼 철저한 자구실천을 전제로 출자전환해 회생을 앞당기는 방안을 조심스레 타진하고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현대측의 자구노력에다 채권단의 출자전환까지 이뤄지면 금상첨화"라고 말했다.

출자전환시 특혜시비를 잠재우려면 기존 대주주의 지분 감자(減資·자본금감축)가 불가피하다.

감자가 이뤄지면 그 폭에 따라 다르지만 채권단이 영향력을 행사하는 주주군이 되면서 경영권에도 변화가 온다.

이런 이유와 4대 그룹 계열사들은 자구노력으로 정상화해야 한다는 기존의 구조조정원칙 때문에 실제 출자전환까지는 상당한 논란이 예상된다.

◆ 동아건설 =채권단에 신규자금 3천4백60억원을 요청했지만 채권단은 아직까지 묵묵부답이다.

채권단은 지난 13일 운영위원회를 열었지만 지원여부를 확정짓지 못했다.

오히려 대한통운이 동아건설에 선 지급보증액 7천억원을 먼저 받아내야만 동아건설 문제를 논의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주채권은행인 서울은행 관계자는 "2년간 워크아웃 작업을 했지만 안팎의 여건이 전혀 좋아지지 않고 있다"고 말해 현 상태로 계속 끌고가기 어렵다는 뜻을 내비쳤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고사(枯死)''보다는 워크아웃 방안을 전면 수정해 국내 사업부문을 정리하되 리비아공사 등 해외와 토목사업 쪽에 치중하는 기업으로 완전히 탈바꿈시키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 쌍용양회 =위성복 조흥은행장은 "쌍용양회는 외자유치와 채권단의 출자전환 등으로 되살릴 계획"이라며 "쌍용양회 스스로도 자구노력을 성실히 이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채권단의 출자전환 예상금액은 3천억원.

일본 태평양시멘트에서 3억5천만달러의 외자가 들어오면 정상화가 가능하다는게 채권단 판단이다.

◆ 고합 =주채권은행의 한빛은행 김종욱 상무는 "현재의 워크아웃 작업을 계속 추진하면 큰 문제가 없을 것 같다"며 퇴출 가능성을 부인했다.

그는 "장치산업이라서 감가상각비가 많이 들어갔을 뿐 감가상각 전에는 8백75억원의 영업이익을 냈기 때문에 미래의 현금흐름에는 문제가 없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다른 채권단은 고합의 진로에 대해 유보적인 입장을 밝히고 있다.

H은행 담당 이사는 "두번에 걸쳐 채무조정을 해줬는데 상반기에 3백14억원의 적자를 냈다"며 "채권단간 의견조율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 진도 =상반기에 2천6백97억원의 매출을 기록했지만 2백65억원의 적자를 봤다.

주채권은행인 서울은행은 기업구조조정전문회사(CRV)를 통해 외자를 유치하는 워크아웃작업을 추진하고 있다.

서울은행 관계자는 "아직 진도의 지원.퇴출 여부에 대해 결론이 난 사항은 없다"며 "기존 워크아웃 계획을 계속 진행하는 것이 1차적인 대안"이라고 말했다.

김준현 기자 kim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