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증권사의 영향력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지난 97년 우리경제가 국제통화기금(IMF)체제란 나락으로 떨어지면서 이런 현상이 두드러지기 시작했다.

IMF를 졸업한 요즘에도 그 위세는 더 커져만 간다.

외국증권사들의 조사분석자료에 따라 국내 주가가 춤을 추고 있는 게 대표적인 사례다.

이미 증시는 "외국인에 의한,외국인을 위한,외국인의 주가"가 돼 버렸다.

현물시장과 선물시장이 외국인의 매매패턴에 따라 울고 웃는다.

국내 개인투자자들과 기관투자가들은 외국인의 눈치보기에 급급하다.

외국증권사들은 현재 도매영업에 치중하고 있다.

그렇지만 외국사들이 향후 소매영업에 뛰어들 경우 엄청난 속도로 국내 증권시장을 잠식해 나갈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외국증권사들의 강점은 무엇일까.

<>진출현황=국내에 지점을 두고 있는 외국증권사는 메릴린치,모건스탠리,UBS워버그,벵커스트러스트,HSBC,노무라,엥도수에즈WI카,다이와,바클레이즈캐피탈,CSFB,크레디리요네,클라인워트벤슨,코쿠사이,도이치,SG,쟈딘플레밍,ING베어링,ABN암로아시아,골드만삭스,JP모건증권 등 20개에 달한다.

이중 미국계인 메릴린치,모건스탠리,스위스계인 UBS워버그,CSFB 등이 대형사로 시장점유율이 높다.

대부분 국내외 주식매매중개,리서치업무를 하고 있으며 대형사들은 기업금융,주식인수,M&A업무까지 하고 있다.

여기에 체이스맨해튼,리먼브라더스,DLJ,클라리온캐피털,니꼬증권 등 5개사는 서울에 사무소를 개설해 놓고 있다.

합병사지만 경영권이 살로먼스미스바니로 넘어간 살로먼스미스바니환은증권을 포함하면 외국증권사는 모두 26개에 달하는 셈이다.


<>주식매매 중개=외국인들로부터 주문을 받는 해외부문이 80~90%,기관투자가들로부터 받는 국내 매매주문 비중이 10~20%다.

IMF이전에는 외국인들이 국내 증권사의 국제영업부를 이용해 주문을 내기도 했다.

그러나 동서증권 등이 쓰러지면서 결제능력 등의 신뢰도가 추락,최근 한두 대형 국내 증권사를 제외하곤 거의 주문을 주지 않고 있다.

심지어 국내 펀드매니저들은 그날그날 외국인의 매매정보를 미리 입수하기 위해 외국증권사에 주문을 내는 사례가 있을 정도다.

도매영업외에 국내 일반투자자들을 대상으로 한 소매영업도 허용돼 있으나 수익성이 없어 아직은 소극적이다.


<>막강한 리서치부문=국내 증권사 애널리스트들 사이엔 외국증권사로 스카우트되는 것을 일종의 "신분상승"으로 여기고 있다.

국내 증권사보다 훨씬 높은 연봉을 받을 수 있는데다 보다 앞선 기업분석방법을 배울 수 있는 기회로 삼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외국증권사들의 본사는 광범위한 자료 및 선진화된 분석틀을 지원하고 국내 증권사들에 비해 생생한 해외정보까지 애널리스트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이런 데이터베이스와 인센티브에 힘입어 작성된 한국의 거시경제 및 기업분석자료는 외국인 투자자들의 나침반 역할을 한다.

외국증권사가 제시하는 "매수"나 "매도"투자의견에 외국인이 투자를 결정한다.


<>글로벌 네트워크=한국전력 포항제철 등 국내 공기업이 민영화를 위해 주식을 해외에 매각했을 때 외국증권사들은 더욱 영향력을 발휘했다.

해외주식매각,해외증권발행을 주선,중개하는 주간사 증권사 자리는 항상 이들의 몫으로 돌아갔다.

국내 증권사는 겨우 한다리 걸치는 정도다.

정보,네트워크,자금력 등의 차이가 이같은 비대칭을 만들어낸다.

한 공기업이 미국시장에서 주식을 매각한다고 치자.

자금력이 큰 이들 외국증권사는 별 부담없이 매각주식 물량을 인수,폭넓은 네트워크와 정보력을 이용해 미국의 뉴욕거래소시장이나 나스닥시장에서 파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모건스탠리증권의 한 관계자는 "국내 증권사가 일년내내 죽으라고 주식중개 수수료를 벌어봐야 외국증권사가 대형 M&A중개,주식인수 및 중개로 벌어들이는 수수료에 비하면 보잘 게 없다"고 전했다.


<>엄격한 리스크 관리=증권거래법 시행령에 따라 올해부터 국내 증권사들이 허겁지겁 준법감시인(Compliance Officer)을 선임하고 있다.

준법감시인이란 자산관리,위험관리,고객관리 등에 있어 규정을 준수하는지 점검하는 임원.

회장이나 사장에 직속돼 있다.

반면 일찌기 준법감시인 제도를 정착시킨 외국증권사들은 리스크관리에 철저하다.

한 외국증권사 관계자는 "영업규정 준수문제로 본사에서 얼마나 닥달하는지 피곤하기 그지 없다"까지 말했다.

외국증권사들이 대부분 상품주식을 운용하지 않는 것도 보다 엄격한 리스크관리의 한 단면이다.


<>일본의 선례=외국증권사들은 아직 국내 소매영업에 적극 뛰어들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이런 강점을 앞세워 개인투자자들을 대상으로 한 소매영업을 본격적으로 펼칠 경우 예상되는 영향력은 막강하다.

일본의 예가 이를 시사한다.

3년전 도산한 일본 야마이치증권의 전영업점을 인수한 미국 메릴린치증권의 시장점유율은 현재 1위에 올라있다.

국내 증권사들이 반면교사로 삼아야한다.

김홍열 기자 com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