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도 예술도 경제안에 있다.

그 풍부한 정신적 가치는 논외로 하더라도 그것이 생성되고 향유되는 과정은 경제제도의 틀에서 벗어날 수 없다.

"시장"을 통해 생산되고 확산되며 소비되고 발전한다.

특히 "문화의 세기"에 들어서면서 문화나 예술의 산업적 측면이 부각되고 있다.

제조업에 월등히 앞서는 고부가가치 지식집약산업이라는 점에서다.

영화 미술 공연...

한때 "취미"로 분류됐던 분야들은 경제의 주축으로 급속히 발돋움하고 있다.

산업연구원의 추산에 따르면 올해 국내 문화산업의 시장규모는 약 5조원.

성장세도 눈부시다.

지난 95년부터 97년까지 연평균 성장률 8.3%를 기록했다.

올해엔 10%, 2001년엔 13.7%에 달할 전망이다.

<> 영화

"전국관객 6백만명, 흥행수입 5백6억원"

99년 한국영화 돌풍을 주도한 영화 "쉬리"(감독 강제규)의 흥행성적표다.

한국은행 보고서에 따르면 쉬리가 직.간접적으로 유발한 생산액은 1천1백7억원, 부가가치는 3백37억원에 이른다.

고용효과도 1천1백58명에 달한다.

쏘나타 한 대와 비교하면 생산유발액(대당 2천9백54만원) 기준으로 3천7백50대에 해당한다.

부가가치로 따지면 3천3백7대분(대당 1천19만원), 고용 유발로는 4천6백대(대당 0.25명) 분이다.

결과적으로 쉬리 한 편이 쏘나타 1만1천6백57대를 생산한 효과를 거둔 셈이다.

"쉬리" "쥬라기 공원"(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등 일련의 구체적 통계들은 영화가 문화산업 주역중 하나임을 입증한다.

미국의 유수 연구소는 오는 2014년께면 영화가 우주항공산업에 이어 두번째 산업이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국내 영화시장도 몇 년 후면 10조원 규모로 성장해 자동차나 반도체 산업과 같은 규모의 기간산업으로 정착할 전망이다.

한국영화는 최근 3년간 20%(흥행수입 기준)를 웃도는 상승세를 이어왔다.

전문가들은 "한국영화계가 제작자본 안정과 체질개선기를 맞았다"고 진단한다(영화진흥위원회 김혜준 연구실장).

양적.질적 성장에 발맞춰 수출쪽으로도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이같은 시점에 "천사몽" "순애보"처럼 아시아권 국가들과의 합작영화 제작이 붐을 이루고 있는 것은 해외 시장을 겨냥한 행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 애니메이션.캐릭터.게임

우리나라는 세계 3위의 애니메이션 생산국.

세계 애니메이션 물량의 30%를 제작한다.

한국애니메이션제작자협회에 등록된 업체는 93개.

영세업체들을 합치면 2백여개가 넘는 것으로 것으로 파악된다.

제작 인원만 1만5천여명에 달한다.

하지만 대부분 업체들이 오랫동안 선진국 주문에 의한 OEM(주문자 상표 부착) 제작으로 성장해온 탓에 독창적인 제작능력은 일천한 편이다.

캐릭터 산업도 마찬가지다.

캐릭터 시장 규모는 일반적으로 애니메이션 산업의 20배.

세계 캐릭터 시장규모는 97년을 기준으로 약 1백조원.

미국이 50조원, 일본 20조원에 달한다.

한국은 6천억원정도다.

그러나 국내 캐릭터 산업은 그 원천이 되는 출판만화나 애니메이션 부문과의 연계가 지극히 부진한 실정이다.

"산업"을 뒷받침할 자본, 아이디어, 마케팅과도 제대로 결합하지 못하는 고질적인 취약성도 문제다.

게임산업은 정보통신 산업의 급속한 발전과 기술 진보에 힘입어 여러 문화산업중 가장 빠른 성장세를 보인다.

우리 게임시장 규모는 99년 현재 6천2백56억원.

국내 문화산업중 3위다.

이는 매년 15% 이상의 성장을 지속해 2002년께는 1조원이 넘을 것으로 예측된다.

하지만 게임 역시 기획 마케팅 자금조달력에서 취약성을 면치 못하고 있다.

<> 미술

미술품 거래에는 흔히 화가, 화랑, 소장가가 개입한다.

시장경제의 관점에서 보면 공급자, 중개자, 수요자의 3요소를 갖춘 셈이다.

경제학적으로 미술품은 미적 효용을 주는 소비재 역할을 하는 동시에 일정한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는 투자 수단의 기능까지 지닌다.

선진국의 경우 거대 자본력을 갖춘 전문 화상들과 세계적인 경매회사들을 중심으로 시장이 움직인다.

투자수익률에 대한 연구도 활발하다.

하지만 국내 실정은 다르다.

김재준 국민대 경제학부 교수는 "국내 미술 시장은 공급자만 넘치고 수요자가 부족한 탓에 공급자 중개자 수요자라는 삼자의 구성이 불균형을 이루고 있는 점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김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국내 전체 화가 수는 어림잡아 1만명.

이중 불과 1%에도 미치지 못하는 1백명 정도가 미술 시장에서 작품을 제대로 거래하는 실정(97년 기준)이다.

반면 이른바 "컬렉터"는 기껏해야 1천5백명, 전문 컬렉터는 1백명을 밑도는 것으로 추산된다.

전문가들은 미술시장 활성화를 위해서는 투명한 유통구조와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가격책정 등 당면과제를 해결하는 일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 공연

공연예술의 경제적 특징은 소비자들의 기호가 후천적으로 개발되고 가꾸어진다는 점이다.

이는 대중들이 예술작품에 대한 기호를 높일 수 있도록 적극적인 교육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그래야만 지속적인 생산과 소비가 이뤄진다.

정부의 정책적 지원도 절실하다.

공연예술의 경우 "생산성"이 거의 향상되지 않기 때문에 다른 서비스보다 가격상승이 훨씬 가파르다.

이를 타개할 다양한 활로를 모색해야 한다.

김혜수 기자 dears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