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연말에는 내년 달력 구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경제사정이 다시 어려워지고 제2의 구조조정이 진행되면서 기업과 금융기관들이 달력 제작 규모를 대폭 줄였기 때문이다.

''밀레니엄 특수''로 작년말 달력 인심이 유례없이 후했던 것과는 대조적인 양상이다.

이로인해 달력 제작업계는 울상이다.

수요자들이 주문량을 대체로 작년보다 20∼40% 줄인 상태다.

물량을 줄인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아직까지 내년 달력 제작량을 정하지 않은 곳들이 적지않아 마음놓고 용지도 확보하지 못할 정도다.

◆달력 주문량 축소=대기업과 금융기관들이 달력 주문량을 평균 30% 안팎씩 줄였다.

더군다나 대기업의 경우 계열사의 주문량을 모아 그룹단위로 한꺼번에 2백만∼3백만부씩 주문하던 과거의 관례가 깨졌다.

계열사별로 필요한 만큼씩 소량으로 주문하는 방식으로 바꾸었다.

A생명은 한때 70만부씩 제작하던 달력 겸용 가계부를 올해는 40만부로 줄였다.

축협과 통합한 농협도 벽걸이용 달력과 탁상용 달력 등 전체 물량을 지난해보다 30% 줄였다.

B화학은 주문량을 지난해보다 10% 줄이는 대신 품질을 다소 높여 꼭 필요한 고객에게만 제공하기로 했다.

이 회사는 작년에 1억원을 들여 2만부의 달력을 찍었었다.

8월께까지만 해도 달력이나 다이어리를 만들겠다는 벤처기업들이 꽤 있었지만 코스닥이 급속도로 위축되면서 벤처기업의 달력주문 계약은 대부분 취소됐다.

주요 주주와 관련기관에 돌릴 소량의 고급 다이어리 정도만 남겨둔 상태다.

물량을 줄이는 대신 달력의 종이나 그림 등을 고급화한 곳들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제작비용이 비싼 명화를 요구하는 기업들은 크게 줄어든 실정이다.

대체로 평범한 풍경화가 선호되고 있다.

◆달력 제작업계 울상=달력 제작업체들은 물량을 확보하기 위해 비상이 걸려있다.

예년같으면 이미 주문이 끝나 본격적인 제작에 들어갔을 시점이지만 올해는 아직도 치열한 수주경쟁을 벌이고 있다.

특히 작년에는 ''새 천년'' 첫해여서 달력업계가 특수를 맞았었다.

올해는 지금 상황대로라면 시설을 다 돌리지도 못할 전망이다.

주로 은행들의 인쇄물을 제작하는 서울 을지로의 J캘린더는 단골 은행들의 주문량이 거의 절반 수준으로 줄어 고심하고 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9월초순이면 은행당 3만∼5만부씩 꼬박꼬박 주문이 들어왔었다.

달력 장사로 연말에 수억원의 목돈을 거머쥐었던 이 업체 사장은 올해는 벌써부터 직원들의 연말 보너스가 걱정이다.

보험사로부터 달력주문을 꾸준히 받아온 광명특수인쇄 관계자도 "보험사들의 달력 주문이 지난해에 비해 30% 이상 줄었다"고 말했다.

삼성 현대 등 대기업의 달력을 주로 제작하는 D인쇄는 이들 그룹과 이제서야 제작물량을 협의하고 있다.

종전에는 늦어도 9월초순에 달력 제작계획이 끝나던 터였다.

주문단위가 줄어 단가가 상대적으로 올라간 것도 업계엔 부담이다.

기업들이 물량을 줄이면서 단가는 작년기준 그대로 받으라고 요구한다는 것이다.

대한인쇄문화협회 유창준 부장은 "달력시장 규모가 한때 1천억원대에 달했었지만 올 연말에는 5백억∼6백억원 정도에 그칠 것"이라며 "전자캘린더가 확산되고 있는 것도 달력의 수요를 줄이는 요인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유영석 기자 yoo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