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 < 한나라당 국회의원 ohsehoon@lycos.co.kr >

이탈리아 로마의 번화가에는 콜로세움 주피터신전 등 찬란했던 제정 로마시대의 유물들이 1천5백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잘 보존되어 있다.

예루살렘에는 예수가 갇혀 있었다고 전해지는 토옥(土獄)이 있다.

정사(正史)엔 예수가 잡혀와서 십자가에 못 박힐 때까지 감옥에 들어간 적도 없고 그럴 시간도 없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도 이 ''예수의 감옥''이라고 하는 곳엔 순례자와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에 비해 우리의 문화유산 보존상태는 참으로 부끄러운 수준이다.

높은 고층건물로 문화유산을 에워싸 감춰버리거나,아예 털어내어 현대식 건물로 그 자리를 채워버렸다.

서울 남산 필동에서 흐르는 마르내 연변의 상류 인현동에는 정인지의 집이 있었고,중류에는 명 재상 유성룡의 집이 있었던 곳이며,그의 집에서 멀지 않은 곳은 이 충무공이 태어나 자란 집이 있던 터이다.

그러나 지금 그곳에는 양옥들이 들어서 있어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다.

이뿐만이 아니다.

얼마전에는 백제 5백년의 역사가 살아 숨쉬는 풍납토성이 훼손됐으며,조선시대 정통 한옥의 모습을 갖고 있었던 윤보선 전 대통령 생가는 바로 옆에 들어선 건물로 인해 원형을 보기 어렵게 되었다.

수많은 유적들이 우리의 무관심 속에 잊혀지거나 사라져 가고 있는 것이다.

역사는 반드시 그 깊이로 평가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반만년 역사는 우리에게 정신적 우월감의 원천이었으며,이른바 지구촌시대에 당당하게 내놓을 수 있는 든든한 밑천이기도 하다.

오늘날 잘 보존된 자연환경이 ''국가경쟁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듯, 역사환경은 우리의 정신을 풍요롭게 만드는 민족 공유의 재산이자 항구적 가치 창출이 가능한 관광자원인 것이다.

외국 관광객이 한국에 찾아 올 때는 현대적인 도시건물을 보러 오는 것이 아니다.

다른 나라에서 볼 수 없는 ''한국의 고유 문화''를 맛보러 오는 것이다.

오늘을 사는 우리는 문화유산을 복원할 의무는 있어도 파괴할 권리는 없다.

후손들로부터 ''역사를 보존하지 못한 세대''''가진 자원도 쓸 줄 모르는 조상''이라는 지탄을 받을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