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작업은 삶의 모든 희로애락을 물방울에 녹여 없애는 과정입니다.

어떻게 보면 불교의 참선과 같다고 할 수 있죠"

''물방울 화가'' 김창열(71)씨.

그는 자신의 작업을 선승이 가부좌를 틀고 행하는 참선에 빗댄다.

일상에서 겪는 모든 번뇌망상을 물방울에 담아 증발시킨다는 것.

어떻게 보면 화면속에 등장하는 수많은 물방울들은 고뇌의 흔적인 셈이다.

그의 작업은 품이 많이 든다.

1천호짜리 대작의 경우 물방울수가 무려 3천여개나 된다.

이런 대작을 완성시키려면 꼬박 한달은 매달려야 한다.

그래서 김씨는 자신의 작업을 일손이 많이 가는 농삿일에 비유하기도 한다.

김씨가 40여년의 그림인생을 되돌아보는 개인전을 오는 30일까지 서울 사간동 갤러리현대에서 갖는다.

97년 이후 3년만에 다시 여는 고국전으로 이번이 73번째 개인전.

전시작품은 40여점.

출품작들은 물방울만을 소재로 한 작품이 대부분이지만 물방울에 천자문을 끌어들인 작품들도 눈에 띈다.

천자문은 그가 초등학교 때 할아버지에게 처음 배웠던 문자.

그는 "천자문은 나의 유년기 향수를 자극하는 최상의 울림"이라고 말했다.

서울대 미대를 나온 김씨는 국내 앵포르멜 미술운동의 제1세대.

누구보다 극심하게 한국전쟁을 경험한 그는 당시의 뼈아픈 상처를 화면에 격정적으로 표현했다.

그러나 그의 작품세계는 69년 파리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변하기 시작한다.

세계화단의 중심지로 건너간 그는 72년 물방울이라는 독특하면서도 동양적인 소재를 발견,자신의 작품세계를 유감없이 캔버스에 담아냈다.

작품제목을 ''회귀''시리즈로 붙인 것은 작가가 태어나고 자란 토양과 풍토로 돌아간다는 뜻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다.

물방울을 소재로 작업을 한 지도 근 30년의 세월이 흘렀다.

처음엔 사람의 입김이 전혀 들어가지 않도록 스프레이로 물방울 모양을 만들어냈다.

이후 80년대 들어서는 전통적 민화기법으로 물방울의 깊이를 더했고,90년대에는 천자문을 화폭에 도입해 변화를 꾀했다.

일부화가들이 물방울작품을 모방하는데 대해 김씨는 "내 덕에 여러 사람이 먹고 산다고 생각하니 별로 기분이 나쁘지 않다"고 밝혔다.

지난 3월 김대중 대통령과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의 파리 엘리제궁 만찬장에는 퐁피두 센터에 소장된 1천호 크기의 그의 작품이 내걸려 양국 우호증진의 가교 역할을 했다.

김씨는 고희를 넘긴 나이지만 불타는 창작열로 엄청나게 많은 작품을 만들어내고 있다.

한해 3∼4차례씩의 개인전을 갖는다는 것은 보통 열정으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

지난 30년간 탄생시킨 작품만도 2천여점에 이른다.

(02)734-6111∼3

윤기설 기자 upyk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