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가차원은 물론 기업 및 산업차원에서 "로드맵(road map)"이라는 것이 세계적으로 유행이다.

국가차원에서는 각종 비전을 담은 로드맵 작성이 활발하고,산업 및 기업차원에서는 기술로드맵(technology road map)이 확산되고 있다.

미국의 "디지털 이코노미",유럽연합의 "e유럽",일본의 "e재팬"등은 디지털 경제의 비전과 전략을 담은 국가차원의 대표적 로드맵이다.

새로운 경제환경에서의 국가경쟁력 확보가 목적이겠지만 이런 로드맵은 현재 다른 국가들도 채택하기 시작했다.

산업차원에서 로드맵 작성도 활발하다.

정부가 주도하거나 협회나 컨소시엄 등이 적극 나서고 있다.

미국 에너지부의 9개 산업에 대한 기술로드맵,캐나다 정부의 항공산업에 대한 기술로드맵은 전자에 해당한다.

반면 미국 반도체협회의 반도체 기술로드맵 등은 후자에 해당한다.

급변하는 기술환경에서 공유할 것은 공유함으로써 혼자서는 감당키 어려운 위험을 축소하고 싶다든지,로드맵을 통해 지배적 표준을 유도함으로써 시장에서 공존하겠다는 기업들이 증가할수록 산업차원의 로드맵은 더욱 활성화될 전망이다.

이에 비해 개별기업 차원의 기술로드맵은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지 선진기업들 사이에선 이미 확산돼 있다는 분석이다.

여기서 로드맵의 목적은 당연히 동일산업에 속하는 타기업들에 대해 경쟁우위를 확보하자는 것이다.

모토롤라 루슨트테크놀로지 등 전세계적으로 200여개 선진기업들은 기술로드맵을 전략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산업차원의 로드맵 공유가 기업들의 차별적 경쟁을 배제하는게 아니고 보면 기술지향적 기업들에게 내부적 로드맵은 여전히 중요하다.

선진국에서 이처럼 여러차원의 로드맵 작성붐이 생겨난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기술예측과 깊은 관련이 있다.

경제개발협력기구(OECD)가 90년대 초에 분석한 바에 따르면,미국은 60년대 초부터 기술예측을 시도했고,일본은 69년부터 이를 정기적으로 실시해 왔다.

80년대에는 프랑스가 이를 시도했고,90년대에 들어와서는 독일 영국 호주 네덜란드 등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기술예측이 일반화됐다.

90년대에 들어와 기술예측이 특히 확산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당시 "작은정부론"이 등장하면서 정책의 우선순위가 중요과제가 됐고 선택과 집중전략이 부각됐다.

이에따라 기술전략에서도 "어떤 기술이 어느 시기에 어느 정도의 확률로 등장할 것이며,사회경제적으로 어떻게 활용될 것인지"에 대한 예측을 필요로 했다.

그래야 무엇을 선택해 집중적으로 투자할 것인지를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기술예측을 국가별로 자세히 들여다 보면 다소 차이가 있다.

일본의 기술예측(technology forecasting)이 20~30년 후에 가능한 기술자체의 예측이라면,영국형의 기술예측(technology foresight)은 시장과 환경측면의 각종 요인도 함께 고려한 기술혁신 중심의 예측이다.

하지만 공통된 현상이 있다.

그것은 기술예측을 채택한 국가에서는 대부분 기술로드맵 작성과 활용도 활발했다는 점이다.

그런데 이 기술로드맵에는 본질적으로 중요한 특성이 있다.

흔히들 알고 있는 기술트리(technology tree)와는 다르다.

주어진 시점에서 기술의 계층적 연관구조라고 정의할 수 있는 기술트리가 정태적(static)이라면 기술로드맵은 동태적(dynamic)인 것이다.

목표가 되는 성과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 기술적 대안이 로드맵에 담길 수밖에 없고,선택에 따른 기회,위협,강점,약점요인들을 시간에 따라 점검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선진국에서는 국가차원이나 산업차원의 로드맵을 작성할 땐 대부분 초기부터 정부와 민간간 긴밀한 파트너십을 구축한다.

그리고 이러한 파트너십은 정부와 민간의 상호보완적 역할분담으로 이어지고 있다.

우리는 어떤가.

IMT-2000을 두고 표준싸움을 하고 있지만 또 하나의 유력한 기술적 대안에 대한 사전 대응능력이 없었던 탓도 있고 보면,정작 기술로드맵을 작성하고 활용해야 할 국가는 우리가 아닌가 싶다.

안현실 전문위원 경영과학박 ahs@hankyung.com